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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전쟁 명장 열전┃81 ▶ 청사에 길이 빛나는 청산리 전투 1918년 만주로 망명. 대한정의단에 합류한 군사부문 책임자가 되었고, 대 한정의단을 군정부로 개편한 후 사령 관에 임명. 같은 해, 무오독립선언서 에 서명. 1919년 길림 왕청현에 설립된 북로군정서 총사령관으로 취임. 연성 사관학교 교장 겸임 1920년 10월 21일 ~10월 26일, 한국독립투쟁사에 최대의 승리를 거둔 전투였던 청산리 6일전쟁 을 지휘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1925년 3월 15일에는 김혁·최호·나중소·조성환 등과 함께 전 북로군정서 정신에 입각한 신민부를 조직 하였으며, 군사부 위원장겸 총사령에 선임되었다. 백운평 전투 유적과 청산리 기념비 전경 북로군정서 본부 유적지 (길림성 왕청현 서대파촌) ▶ 전민족유일당 운동에 나서다 1928년에는 참의부 ・ 신민부 ・ 정의부의 3개 단체통합을 위하여 전민족유일당 운동에 나서 전력을 다하였으나 각단 체의 이해 관계로 실패하고 혁신의회를 구성하였다. ▶ 동족의 총탄에 순국하다 1930년 영안현 일대의 동포들의 생활안정을 위하여 중동선 산시역 부근에 금성정미소를 설치하고 동년 1월 24일 정미소에서 작업을 하던 중 고려공산청년단 회원이며 재중청년 동맹원인 박상실, 일명 공도진이 쏜 흉탄을 맞고 순국하였다. 북로군정서 사관연성소 유적지 (길림성 왕청현 서대파 태평촌) 청산리 대첩의 영웅 김좌진 장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