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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사령부와 광복군총영┃41 광복군사령부와 광복군 총영 ▶ 광복군사령부는 1919년 12월 남만주에서 결성한 독립군 통합 단체 남만주의 독립투쟁 단체인 대한의용군사의회·한족회·대한독립단·대한청년단연합회 등의 지도자들이 남만주 관전현 향로구에 모여 각 단체를 통합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에 두기로 합의하고 조직한 서간도 지역 최초의 통합군사기관이다. 광복군사령부는 재만한인의 통치기관 으로서 광복군 참리부를 동시에 결성하였고, 광복군사령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의 직할 기관이 되었으며, 각 지방에는 6개 군영을 설치하여 독립전쟁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광복군사령부 본부 유적지 (요녕성 관전현 양목천진 향로구) 압록강 서북쪽 40km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독립전쟁의 국내진격 작전을 전개하기에 적합한 곳으로 광복군 3,782명이 활동하던 지역이다. 광복군 사령장 조맹선은 하얼빈에서 군사훈련에 전력 하고, 참모장 이 탁이 광복군을 거느리고 국내, 국외를 통하여 일제군경 습격, 식민통치기관 파괴, 밀정 및 친 일파 제거, 군자금 모금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광복군사령부는 국내진격작전을 계속 수행함으로 써 국경 3도의 일제식민통치를 마비시켰다. 일제는 압록강 연안에다 3리 혹은 5리마다 파출소를 두고 엄중히 경비를 하는 한편 때마침 시베리아에 출전 하였다가 돌아오는 일본군으로 하여금 북만주에서 천 인공노할 경신대학살을 감행하였고, 다시 남만주의 독 립군을 공격하기 위하여 부대를 남만주로 향하자, 광복 군사령부는 한인사회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일본군과의 정면 충돌을 피해 군대를 관전현, 환인현 산간벽지로 분 산 이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