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page

의열단┃109 의열단은 1919년 11월 10일 길림시 우마행 호동 파호문 반씨家에서 신흥무관학교 출신이 중심이 되어 창설하였다. 단원은 김원봉·윤 세주·이성우·곽경·강세우·이종암·한봉 근·한봉인·김상윤·신철휴·배동선·서상 락·권준 등 13명이며 단장에는 김원봉이 선출 되었고, 김대지·황상규가 고문으로 활동하였 다. 의열단은 공약 10조, 5파괴, 7가살을 행동 강령과 목표로 삼고, 천하의 정의의 사(事)를 맹렬히 행하는 무장투쟁을 선언하였다. 의열단 창설 유적지 (길림시 파호문) 1919년 의열단 활동유적지 북경역(좌)과 북경시 외교부로 59호(우) 일대 의열단의 항일무장투쟁 의거 의열단 창설 단원 ▶ 부산경찰서 폭탄의거 : 1920년 9월 14일 오후2시 30분경 부산경찰서장을 면담한 의열단 박재혁은 그자리에서 폭탄투척으로 하시모토서장 주살 ▶ 밀양경찰서 폭탄의거 : 1920년 12월 27일 밀양경 찰서 서장실에 의열단원 최수봉이 폭탄 2개를 투척 ▶ 조선총독부 폭탄의거 : 1921년 9월 12일 오전 서 울 조선총독부청사에 의열단 김익상이 폭탄 투척 ▶ 상해 황포탄 의거 : 1922년 3월 28일 일본 육군대 장 다나카를 사살하기 위해 의열단 오성륜, 김익상, 이종암이 저격 ▶ 종로경찰서 폭탄 의거 : 1923년 1월 12일 종로경 찰서 폭탄투척 후 일본경찰 1,000여명과 시가전을 벌인 의열단 김상옥은 일본군 10여명을 사살하고 장렬히 순국 의열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