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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민단의 국내 진격작전 1920년 6월4일 새벽 5시, 북간도 항일무장단체 신민단 소속 박승길 부대 독립군 30여명이 두만강변 삼둔자(三屯子)에서 출 발하여 두만강을 건너 온성군 강양동의 일본군 초소를 습격, 후 꾸에 산다로 등 일본군 6명을 사살하고 강을 건너 돌아왔다. 강 양동 습격작전은 당시 연변과 북간도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항일단체들이 진행하고 있는 국내진격작전의 일환이었다. ▶ 항일독립전쟁의 횃불을 들고 독립군사령부는 1개 소대를 삼둔자 서남쪽 봉화리(烽火里)에 매복시켰다. 이화일 소대장의 교묘한 유인작전은 약간의 병력으 로 총격전을 벌이면서 일본군을 유도하였다. 일본군이 잠복해 있 는 독립군 부대 앞까지 추격해왔을 때 독립군은 100m 고지에서 일제히 사격을 퍼부어 60명을 사살하였다. 이때 독립군 2명이 전 사했다. 독립군의 잇따른 공격에 막대한 피해를 입은 일본군은 다 음날 아침 야스가와 소좌 지휘하에 보병 제73연대 소속 기관총 소대와 보병 75연대 보병 1개 중대로 월강추격대를 편성하였다. 6월 6일 밤 9시 해란강과 두만강 합수목에서 강을 건너서 후안산 촌으로 이동하여 왔다. 일광산에서 숙영하던 아라요시 부대도 안 산으로 진군하라는 명령을 받고 가야하를 건너 후안산 부근에서 야스카와 부대와 합류하여 봉오동으로 진군할 준비를 마쳤다. ▶ 봉오동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다 일본군은 오전 11시가 될 무렵 독립군 포위망 안으로 들어왔으나 독립군은 매복한 채 공격하지 않 았다. 독립군 공격이 없음을 확인한 일본군 본대가 안심하고 골짜기 안으로 들어섰다. 연대장 홍범도 는 직접 2개 중대를 인솔하고 서남산 중턱에 위치하여 일본군의 선봉이 봉오동 어구를 통과하도록 하였다. 일본군은 봉오동 상촌에서 학교를 수색하고 나서야 독립군의 매복에 걸린 것을 알고 급 히 중촌으로 후퇴하려는 일본군을 향해 홍범도의 총에서 불을 뿜었다. 일본군 지휘관이 말에서 굴러 떨 어졌다. 홍범도 장군의 총공격을 알리는 총소리였다. 그동안 일본군의 행동을 지켜보며 숨죽여 기 다 리던 독립군들은 삼면 고지에서 일제히 집중사격을 개시하였다. 일본군은 봉오동 전투에서 157명의 전사자와 200여 명의 부상자를 내고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 온성군 유원진(柔遠鎭)으로 패주하였다. 신민단 삼둔자 전투 유적지 (두만강 도문 삼둔자(간평)) 이제 모든 것을 끝내버리자 죽어 마땅한 섬나라 오랑캐들을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조국과 민족의 이름으로 일본군을 처단하라 100┃만주벌의 별이되어 후안산 전투 유적지 (두만강 후안산) 후안산촌과 고려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