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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독립전쟁 50년의 거룩한 울림 ▶ 하얼빈 전략요충지, 쌍성보를 점령하다. 한국독립군 3천 명과 중국군 2만 5천 명으로 편 성된 한중연합군은 쌍성보 점령계획을 수립하였 다. 쌍성보는 합장선(哈長線 : 하얼빈에서 장춘간) 철도의 요지이며, 북만주 중요 물산의 집산지이므 로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었다. 1932년 9월 3일 총사령 지청천 장군이 흑룡강 지방에서 부대를 인솔하고 아성현으로 오자, 독립 군의 전열을 다시 편성하고 김창환이 부사령이 되 어 쌍성보를 향해 진군하였다. 쌍성보를 향해 가는 도중에 만주군의 저항을 물 리치면서 3일 동안에 2백여 리를 진격하여 쌍성보 남문 가까운 지점에 있는 소성자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중국군 고봉림부대와 합세하여 치밀한 작전계획을 수립하였다. ▶ 쌍성보 승은문을 돌파하라. 중국군은 동문과 남문을 공격하고 독립군은 서 문을 공격하기로 결정한 후 1932년 9월 20일 새 벽 총공격을 개시하였다. 성내에는 만주군 3개 여 단이 완강하게 저항을 하였으나 한국독립군의 맹 렬한 공격에 마침내 북문으로 도주하기 시작하였 다. 그러나 북문 밖에는 미리 이와 같은 사태가 있 을 것을 예상하여 매복시켜둔 중국 홍창대의 공격 으로 대부분이 사살되었다. 제1차 쌍성보 격전은 한중연합군의 승리였으며, 3만 명의 병력이 3개월 동안 생활할 물자를 노획하였다. 쌍성보 전투 유적지(소성자 거리) 쌍성보 전투 유적지(동문(승욱문)과 서문(승은문)) 한중연합군의 하얼빈 쌍성보 전투 쌍성보 전투는 1932년 9월 20일, 11월 17일에서 22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한국독립군과 중국 길림자 위군이 연합하여 하얼빈시(哈爾濱市) 서남방의 쌍성보(雙城堡)에서 일본군과 만주국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를 말한다. 당시 한국독립군은 총사령 지청천과 부사령 김창환, 참모장 신숙, 그리고 조경한 · 최악 · 안종명 · 심만 호 등이 거느리는 각 지대가 합류해 3천 명 내외의 병력이었다. 중국의 항일연합군 부대는 고봉림 등이 거느리는 2만 5천 명의 길림자위군 제1 · 제2 · 제3군과 홍창대, 흑창대, 대도회 등의 중국 민간종교세 력의 항일의용군도 참가해 3만 명에 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