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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독립전쟁 50년의 거룩한 울림 천수평 전투 유적지 홍범도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연합부대 완루구(일명 만리구) 전적지를 답사하러 갔을 때 그 마을에서 느꼈던 것은 동남쪽으로 난 좁은 길을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라 홍범도의 매복작전에 일본 군 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지형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일본군이 왜 고지를 점령하고 그 렇 게 기를 쓰고 달려들었는지 주위 산세를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 천수평 전투(泉水坪 戰鬪) 천수평 전투는 백운평에서 승리한 북로군정서군이 두 번째로 전개한 전투였다. 백운평 전투 이후 철수 를 시작한 북로군정서군은 22일새벽 2시를 넘어 백운평에서 60여 킬로미터 떨어진 이도구갑산촌(甲山 村)에 도착하였다. 북로군정서는 백운평 전투에 지친 몸을 누이고 설익은 감자 몇 알로 허기를 채우고 있을 무렵 동네주민 으로부터 일본군 1개 기병대가 천수평 마을에 머물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이 첩보를 받은 독립군은 즉시 전투준비를 하고 22일 새벽 4시에 출발하여 1시간 동안 행군, 천수평 어 귀에 도착하였다. 김훈중대는 북쪽으로 가서 일본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이민화(李敏華) 중대는 천수평 남방고지를 점령하였으며 이범석이 거느린 2개 중대 병력이 곧장 일본군을 공격하였다. 새벽 5시 30분 에 독립군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응사할 기회도 제대로 찾지 못한 채 무너졌다. 전 투가 시작되자 총소리에 놀란 일본군은 허둥대며 전열을 정비하고자 했으나 북로군정서군의 공격에 효 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일본군은 독립군이 아직도 1백여리 떨어진 청산 리 쪽에 있다고 판단하여 아무런 대책도 없이 진을 치고 있다가 독립군의 습격을 받았던 것이다. 이 전투에서 독립군은 일본군 기병 120여명을 사살하였고, 겨우 탈출에 성공한 일본군은 4명뿐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