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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무관학교의 독립군 양성┃53 ▶ 신흥무관학교 학생모집 경로 신흥무관학교 학생모집 경로는 매우 다양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단동 일대 독립지 사들을 살펴보자. 맹보순은 안동현(현 요녕성 단동시)에서 신흥무 관학교의 연락거점과 학생모집의 역할을 했다. 용인 지역을 대표하는 유학자였던 맹보순은 1910년 경술 국치 후 서간도로 망명하여 조카 김학조와 함께 안 동현에 성신태(誠信泰) 상회를 설립하여 독립운동 가들을 후원하였다. 당시 신흥무관학교를 이끌고 있었던 이상룡, 이시 영, 여준 등과 연결되었고, 안동현 구시가에 거주하 는 이세영, 최치훈, 접리수촌에 거주하는 안효제, 노 익상 등이 서로 연락을 통하고 있었다. 맹보순은 안 동현 구시가의 최치훈 · 이세영, 접리수의 안효제 · 노상익을 연결하는 중심인물이었고, 신흥무관학교 학생 모집에 중심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동녕과 안효제 등은 1910년부터 이시영과 연계하였고, 이세영 · 임방 등도 차례로 유하현(당시 신흥 중학 소재지)로 와서 학교에 참여하였고, 러시아 연해주의 이범윤, 최재형 등 기타 인사들과 연락을 취하 면서 신흥무관학교를 중심으로 안동현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아우르는 연계망을 형성하였다. 안동현 서쪽 지역 한인마을인 접리수에 거주하는 안효제는 이미 60세에 접어든 고령인사였다. 대한제 국 군수로 근무하다 경상도 부근에서 의병을 이끈 뒤 압록강을 건너 통화로 망명하였다. 1913년 봄부터 접리수에서 표면상 농업에 종사하면서 그곳에 거주하는 동지 노상익과 함께 이세영, 맹보순 등과 함께 신 흥무관하교 학생모집에 가담하였다. ▶ 학생모집의 경로는 철저한 비밀루트 단동의 접리수촌에 거주하는 안효제, 노상익이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망명해 온 청년들을 성신태상회 맹보순에게 소개하면, 맹보순은 그들을 다시 이세영에게 인도하였다. 이세영(가명 이설)은 대한제국 군 정위를 지낸 인물로 대한제국군대 해산 때 즉각 항거하여 충남 홍성에서 의병에 가담하였고, 1913년 3 월 유하현 삼원포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의 교관이 되었고, 1920년에는 다시 신흥무관학교의 교장으로 서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였다. 1913년 5월경 안동현 성일호 여관에 투숙하면 서 안효제 · 노상익 · 맹보순 · 최치훈 등으로부터 소개받은 청년들을 신흥무관학교로 인도하고, 관전현 일대 독립군들의 작전을 지휘하였다. 이 세영은 삼원포 서로군정서, 합니하, 고산자의 신 흥무관학교와 수시로 연락하였고, 심양, 장춘, 길 림 등을 거쳐 학생들을 학교에 무사히 인도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세영이 거점으로 활용한 성일호는 최치훈이 안동현 구시가에서 운영하던 숙박업 소 이자 중매상점으로 군자금 마련처이며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독립활동을 협의하던 아지트였다. 신흥무관학교 학생모집 활동가들의 중심지 단동 4번가 거리 단동역의 1920년대 모습 현재 단동역 일대의 모습 단동 접리수 일대의 현재모습 신흥무관학교 학생모집 중심지(요녕성 단동시 전경) 단동시 한인거리의 현재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