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page

46┃독립전쟁 50년의 거룩한 울림 1910년 독립운동가들이 건넜던 압록강의 현재 모습, 단동시 월량도 일대 독립운동가들이 건넜던 압록강 겨울, 1910년 압록강의 모습 1911년 1월, 경북의 혁신유림 김대락, 이상룡, 김동삼, 황만 영, 박경종 가문 등도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망명하였고, 이어 서 왕산 허위 가문, 유인식, 권기일 등이 뒤를 따라 서간도로 이주하였다. 석주 이상룡이 만주망명 전에 이미 가산을 정리하여 독립자 금을 마련하고, 노비문서를 태워 노비들을 해방시키고, 신주를 땅에 묻고 떠났던 사례는 당시 명문가들의 독립의지, 국가와 민 족을 위한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귀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석주 이상룡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안동에서 추풍령까지 걸 어가 기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한 후, 양기탁의 집에 머물며 독 립운동 방략을 상의한 뒤에 다시 1911년 1월 19일 경의선 열차 를 타고 출발하여 신의주에 도착했다. 그 후 가족과 함께 깊은 밤중에 일경의 감시를 피해 썰매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 1월 27 일 단동(丹東)에 도착하였다. 이상룡은 단동에 도착하자 곧바 로 만주지도, 만주역사 등 서적을 구입하여 만주의 역사와 문 화를 탐구하고자 했다. 이상룡 생가, 안동 임청각 백하 김대락 생가, 백하구려 독립지사들이 활동한 단동시의 현재 전경 1910년 3월, 신민회는 긴급간부회의를 열어서 독립전쟁전략을 채택하고, 무관학교 설립과 독립군 기지 창건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로 국권을 상실하자 신민회는 12월에 전 국간부회의를 열어 국외 독립군양성기지의 장소를 유하현 삼원포로 확정하고, 대일무장투쟁을 공식 노선으로 채택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명문가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
49page

신흥무관학교의 독립군 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