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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독립전쟁 50년의 거룩한 울림 대한독립단은 만주로 망명한 의병장 박장호, 조병준, 백삼규, 전덕원 등 각 단체대표 560여 명이 모여 그동안 분립되어 활동하던 독립운동 단체들을 해체하고, 독립 의 쟁취를 위한 무장독립군으로 조직되었다. 전투 경험 이 많은 의병계열의 여러 단체들이 통합된 조직이었기 때문에 강대한 조직을 형성할 수 있었다. 중앙간부는 도총재 박장호, 부총재 백삼규, 총참모장 조병준, 사한장 김기한, 참모장 윤덕배, 부참모장 박양섭 등이었다. 도총재부 산하에는 사무기구로 총단을 두었 다. 총단장은 조맹선, 부단장은 최영호 · 김원섭 등이다. 대한의병들이 만주 망명 후 독립단 창설지 길림성 유하현 대고산 13도 창의군 기념탑 망우공원 대한독립단 창설지 유하현 대화사촌 ▶ 무주 칠연계곡 전투 의병장 신명선은 대한제국군의 시위대 출신으 로 군대해산 이후 고향인 무주로 내려와 무주, 장 수 등 덕유산을 배경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하여 수많은 전과를 올렸다. 무주의 안성면에 주둔한 일제 군경을 습격하고자 진격하다가 칠연계곡의 깊은 골인 송정골에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 일제 군경의 기습공격을 당했다. 신명선 의병대는 덕유산 송정골에서 최후까지 저항을 하였고, 의병장을 비롯해 150여인이 전사 하였다. 칠연전투에서 생존했던 의병이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전사한 의병들을 합장하였고, 그것이 칠연의총이니 무명의병의 충혼이 서린 곳이다. 무주 덕유산 칠연계곡 전투지와 칠연의총 일제의 소위 ‘남한폭도토벌 작전’ 지도와 당시 피체된 의병장 대한독립단은 1895년 을미사변 이후 의병전쟁에 참전했던 의병들이 만주 서간도로 망명하여 창설한 보약사 · 향약계 · 농무계 · 포수단 등 독립운동 단체들을 해산하고, 1919년 4월 15일, 봉천성 유하현 삼원포 대화사에 모여 통합조직한 독립군단이다. 만주 서간도 유하현 대화사에서 대한독립단을 창설하다. 의병의 서간도 망명은 의암 유인석 의병진이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간 후부터 시작되었다. 유인석은 충 주성 전투 이후 관군의 토벌을 피해 1896년 8월, 약 220여 명의 부대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봉천성 환 인현 사첨자(沙尖子)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일행은 혼강(일명 비류수, 파저강)에서 환인현 관리들에게 무 장해제를 당하였으나, 그곳에 머물며 서간도 일대에 기지건설을 위한 북계책을 세우고 실행을 준비했다 . 1897년에 고종의 소명으로 일시 귀국했으나, 다음해 다시 출국하여 향약계를 조직하고, 의병들을 결속 하 면서 국권수복을 위한 의병투쟁을 계획하고 있었다. 의병, 독립군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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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독립전쟁 선언과 준비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