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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봉기와 국권수호전쟁┃21 13도창의군 주둔지 및 삼산리 전투 유적지(양평군 양동면 삼산리, 매월리, 석곡리 일대) ▶ 삼산리에서 서울로 진격하여 통감부를 해체하라. 1907년 11월 7일, 삼산리 전투는 새벽부터 시작되었다. 원주토벌대의 공격을 받은 의병진 은 삼산리 일대에서 해가 질 때까지 교전을 벌 였다. 토벌대는 수적으로는 열세였지만, 기마 로 이동이 빨랐고 신식무기로 무장하였다. 개 인화기는 미약하지만 수적으로 우세하고 지형 지물에 밝은 의병부대는 나름대로 공격과 후퇴를 번복하며 잘 싸웠다. 11월 7일 오후 늦게부터는 서울토벌대가 합세함에 따라 상황이 달라졌다. 서울토벌대가 새벽부터 구 둔치를 넘어 공격해 오려다 그곳을 지키고 있던 의병에 의해 저지당하자, 일단 퇴각하였다가 산포공격과 함께 공격해와 결국 정오경에 구둔치를 내어주고 말았다. 그러나 본진과 다른 마을에 있던 의병진에 게 대비할 시간을 벌어 줌으로써 의병의 피해를 많이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삼산리에 있던 주력부대는 원 삼산과 속골, 분터골, 도소리, 솔치마을 등 곳곳에서 접전하였으며, 주격전지는 도소리와 분터골을 잇 는 다리부근이었다. 일본군은 원주로 퇴군하면서 분터골의 민가 에 불을 지르는 만행도 저질렀다. 삼산리를 비 롯한 양동주둔 각 의병진들은 열악한 무기를 가지고 11월 7일부터 8일까지 토벌대와 수차례 교전하였는데, 8일 오후 토벌대와 맞서 싸우던 삼산리부근의 잔여병력들이 게릴라전을 벌이 다 모두 흩어지자 삼산리 전투는 종료되었다. 삼산리 전투는 13도창의군의 서울진공작전 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일본군이 벌인대토 벌작전이었다. 의병진은 일본군에게 막대한 피 해를 안겨주고, 서울진공작전을 계획대로 수행 할 수 있게 한 의병항쟁사에서 의의가 큰 전투 이었다. 삼산리 전투 유적지(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판대리 일대) 양평 의병공원과 을미의병 기념비(경기 양평 양동면 석곡리) 삼산리 전투 기념비(양평 양동면 삼산리) 판대동 전투(양평 양동면 원주 안창리 경계) 삼산리 전투지도 서원고개전투 설매실전투 삼산리전투 구둔치전투 판대리전투 솔치 전투 일본군 서 울 수 비 대 일 본 군 춘천수비대 일본군 원주수비대 일본군 서 울 수 비 대 일 본 군 춘천수비대 일 본군 원주수비대 일본군 서 울 수 비 대 일 본 군 춘천수비대 일 본군 원주수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