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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전설(92회) • 황해도 신천의 만세시위 (1) 99 3월 19일, 4월 6~7일 용진면 용진면은 초리면 위 신천군의 서북쪽 끝 에 있다. 은율군과 접경에 구월산이 있다. 용진면 사문리(士文里)에 거주하는 기독교 부속 서당 교사 김화선(金化善)은 3월 18일 밤 집에서 태극기 20개를 제작하였다. 다음 날인 3월 19일 오후 2시 김화선은 유천리로 가서 기독교인 및 서당 학생 등 60명과 함 께 만세시위를 벌였다. 헌병이 출동하여 김 화선 등 4명이 검거되었다. 약 18일 뒤인 4월 6일과 4월 7일 용진면 에서 연이어 격렬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4월 7일 밤에는 기독교인과 천도교인 등 300명이 유천 헌병주재소로 몰려가 격렬하게 시위 를 벌였다. 아마도 구금자 석방을 요구했을 것이다. 헌병들이 총을 쏘아 시위대 측에서 3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을 입었다. 황해도 도장관은 이날의 용진면 시위에 대해 다음 과 같이 보고했다. “4월 7일 밤 신천군 각소에서 소요하므로 발포하 여 해산시킴. 헌병 부상자 3명, 폭민 사망자 1명, 부상 불명. 아직 험악한 상태이므로 파병을 구하여 경계에 힘쓰고 있음.” 과장이 있었겠지만, 헌병 부상자 3명이 있었다는 것은 시위가 공세적으로 격렬했음을 말해준다. 용진면 만세시위는 해외 독립운동가들에게도 알 려져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김병조(金秉祚)의 『한국독립운동사략』에는 이 사건에 대해 좀더 구체 적인 양상을 담고 있다. “신천 용진면 독립선언. 신천군 용진면에서는 일 천 오백여 명의 남녀 군중이 회집하야 독립을 선언하고 만세를 열호(熱呼)할 새 적병 이토(伊藤)가 총기를 마 구 쏘아 오병호(吳炳浩) 김순영(金順永) 유심택(劉深 澤) 김영국(金永國) 4인이 순국하고 중상이 심히 많다 더라”(계속)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3 ٠ 1운동의 지방시위에 관 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수석연구원 을 역임했고, 현재 3 ٠ 1운동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다. 3 ٠ 1운동을 중심으로 우리 역사를 새롭게 정리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집필, 강연을 하고 있다. 필자 이정은 신천군 구월산에 있는 패엽사(貝葉寺, 1927년). 통일신라 시기에 창건된   사찰로 일제강점기 31본산 중 하나였다. 6 · 25전쟁 때 소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