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page

98 2023년 6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3월의 전설(92회) “신천군 문화면에 폭동이 일어나 약 200명이 한 무 리가 되어 독립만세를 외치고 시위운동을 개시하자 헌병은 중심인물을 체포하였다. 이에 약 300명이 주 재소에 내습하여 주재소장을 포위하고 그들을 풀어 줄 것을 요구하자, 소장은 참가자의 주요 인물을 파 악하고서 일단 풀어주어, 큰일 없이 시위대는 해산하 였다.” 그 후에도 문화면민들의 만세시위는 계속되었다. 3월 14일 문화면 덕천리 김명성(金鳴聲)은 이영희(李 泳禧)와 함께 종이로 태극기 23개를 만든 후 동각리 문화시장으로 가서 시장 군중에게 태극기를 배포하 고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불렀다. 다시 3월 16일 오전 11시경 문화면 문화시장에서 기독교인 등 약 200명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조선독 립만세를 고창하며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헌병이 출동하여 주도자 2명을 체포하자 종료되었다. 3월 15, 20일 초리면 신천읍내에서 북서쪽 은율군과 접한 초리면의 월 산리 우응봉(禹應鳳)은 유근혁(柳根 赫)과 함께 태극기와 깃발을 만들 었다. 그는 기독교회 조사(助事) 황 치헌(黃致憲)에게 태극기에 '조선 독립만세' 글씨를 깃발에 써 달라 고 부탁했다. 황치헌은 우철희(禹哲 禧) 집에 가서 글씨를 써 깃발을 완 성했다. 우응봉, 우희제(禹禧濟), 황 치헌 등은 달천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일으킬 계획을 세웠다. 또 황치헌은 3월 14일 은율군 은 율면 홍문리 홍진범(洪鎭範)에게 사람을 보내 독립선 언서와 국민회보(國民會報) 각 200부를 등사 인쇄하 였다. 3월 15일은 초리면 달천장날이었다. 우응봉 등은 기독교인들을 비롯하여 주민들이 달천시장에 모이 도록 연락을 취했다. 준비를 마친 주도자들은 3월 15 일 달천시장으로 나아갔다. 시장에 기독교인 300명 도 모였다. 우응봉이 정도원(鄭道源)에게 깃발 10기 를 주어 배부하도록 하고, 우희재(禹禧濟), 우연제(禹 連濟), 권승두(權承斗), 유경선(柳景善) 등은 군중에 게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배포했다. 서광주(徐光周) 는 깃발을 받아 흔들었으며, 주도자들과 기독교인 등 300명이 ‘독립만세기’를 흔들면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날 시위로 9명이 검거되었다. 검거를 피한 우응봉, 우희제, 우연제 등은 닷새 뒤 인 3월 20일 다시 달천장날을 맞자 달천장터에서 예수교인이 중심이 된 약 5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 헌병이 출동하여 8명이 붙잡혀 갔다. 안중근 의사의 생가가 있는 신천군 청계동의 옛모습. 왼쪽 인물은 천주교의  황해도  담당 선교사로 안중근 가문과 친밀했던 니콜라 빌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