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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2023년 6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여성독립운동가 열전 는 주머니에서 계속 사진을 꺼냈는데, 그 사진은 아 주 젊은 사람부터 늙은 사람까지, 미남에서 추남까 지, 날씬한 사람에서 뚱뚱한 사람까지 여러 남자들 이었다. 중매쟁이는 우리에게 말했다. 이 사람들 중 에서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고르면 내가 그 남자에 게 네 사진을 갖다주겠다. 그리고 서로가 결혼에 합 의하고 신랑될 사람이 결혼 준비금과 교통비를 제 공하면 네가 그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미국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 (웨인 패터슨 지음, 정대화 번역, 『하와이 한인 이민 1세 : 그들 삶의 애환과 승리』, 들녘, 2003) - 그렇게 해서 건너간 신부들은 실제 사진과는 다 른 신랑들을 만나 더러는 적응을 못하기도 했지만, 대개는 억척스레 황무지를 개척하듯 하와이 땅에 서 뼈를 묻을 각오로 일을 한 결과 나름대로 자리 잡아 가면서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심영신 지사를 비롯하여 사진신부로 하와이에 건너간 여성들은 대략 1910년에서 1924년 사이에 최대 1천 명 정도 로 추정하고 있다. 심영신 지사는 어려운 환경 속 에서도 미주 하와이에서 대한인부인회(大韓人婦人 會)와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 會)의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조국 독립에 힘을 실어 주었 다. 대한인부인회는 심영신 지사가 하와이로 건너 가기 3년 전인 1913년 4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한인사회의 민족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황마리아 등이 세운 여성운동단체다. 대한인부인회는 자녀의 국어교육 장려, 일제용품 구매 거부운동, 교회와 사회단체 후원, 재난동포 구 제를 주요 행동지침으로 삼았는데 심영신 지사도 이 단체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 특히 1919년 고국에서 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심영신 지사는 국내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하와이 각 지방의 부녀 대표자를 소집하여 부녀 공동대회 개최에 앞장섰 다. 그들은 이 대회에서 조국 독립운동에 대한 후원 을 결의하였다. 한편, 심영신 지사는 1920년대 말 상해 임시정부 의 백범 김구 주석으로부터 재정 부족을 호소하는 편지를 받고 하와이 동포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 는 한편 자금모집에 앞장섰다. 그러한 내용을 백범 선생은 그의 『백범일지』에 빼놓지 않고 그 고마움 을 기록해 놓았던 것이다. 그뿐만 아 니라 1941년 4월 하와이에서 열린 해 외한족대회(海外韓族大會)에 대한부인 구제회 대표로 참석하여 이 대회에서 조직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위원으로 뽑혔다. 여기서 심영신 지사는 임시정 부 후원을 비롯하여 대미외교와 선전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등 독립 운동에 솔선수범하는 삶을 살았다. 심영신 지사를 비롯한 초기 하와이 당시 사탕수수밭(와이파후)은 더 이상 사탕수수 농사를 짓지 않아 풀만 무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