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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가 열전 • 하와이서 조국 광복의 초석을 다진 “심영신” 73 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은 심영신 (沈永信, 1882. 7.20 ~1975. 2.16) 지사는 이른바 ‘하와이 사진신 부’의 한 사람으로 건너간 분이다. 심영신 지사는 황해도 송화(松禾) 출신으로 어려 서부터 교회에 열심히 다닌 독실한 기독교인이지 만 젊은 나이에 어린 아들 하나를 둔 과부가 되었 다. 과부의 상태에서 심영신 지사는 하와이에 진출 해 있던 조문칠과 사진신부로 맞선을 보고 아들과 함께 하와이 땅을 밟은 것이다. 1916년, 하와이로 건너갈 무렵 심영신 지사는 34살로 결코 적지 않은 나이였을 뿐 아니라 한번 결혼한 경험이 있고 어린 아들까지 딸렸지만, 남편 될 조문칠은 선뜻 심영신 지사를 신부로 받아들였다. 그만큼 당시 하와이 사 탕수수밭의 노동자인 노총각들의 결혼 문제는 매 우 심각한 상태였다. 이러한 사정을 알게 된 농장주 들도 한인 노동자들을 안착시키기 위해 미혼 남성 들의 결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때였다. 하와이지역 사진신부의 첫 기록은 『국민보』 1910년 12월 6일 치에 “이내수와 약혼한 한국 부 인이 도항하였는데, 민찬호 목사가 이민국으로 가 서 혼례식을 하였다.”는 기사가 있다. 이 기사 로 보 아 사진신부의 하와이행은 1910년부터 시작되어 1911년 무렵부터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심영 신 지사는 초기 사진신부 보다는 5년 늦은 1916년 에 하와이행에 합류하게 되었다. 심영신 지사는 하 와이 여성단체에서 맹활약했던 만큼 상해 임시정 부 주석으로 있던 김구 선생의 활동을 잘 알고 있었 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어렸을 때 백범 김구 선 생과 앞 뒷집에 살았던 심영신 지사는 상해 임시정 부에서 독립자금이 필요하다는 김구 선생의 편지 가 하와이에 도착했을 때 누구보다도 기쁜 마음으 로 독립자금에 앞장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다. 이 무렵 사진 신부들은 17살에서 24살 정도가 평균 나이였으나 더러는 앳된 소녀티를 갓 벗은 15 살 또는 중년의 40살짜리 신부도 있었는데, 심영신 지사는 당시 신부 나이치고는 좀 많은 편이었다. 사 진신부를 이어준 사람들은 이른바 ‘중매쟁이’ 들이 었다. 중매쟁이에 관한 흥미로운 기사를 보면 “우리 가 중매쟁이에게 불평을 하기 시작하자 중매쟁이 심영신 지사는 1916년 사진신부로 건너가 30년 뒤 대가족을 이루 었다. 가운데 부부가 심영신 조문칠 부부(1949년, 이덕희 제공) 심영신 지사는 부인구제회에서 활약했다(이덕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