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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2023년 6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6월의 독립운동가 지만 일본군은 어둠을 이용하여 주막을 기습 공격 하였다. 산남의진 의병부대는일본군의 기습에 응 전했지만 참패하고 말았다. 이 ‘입암전투’에서 정용 기 의병장이 전사하였다. 아들 정용기 전사 후 아버지 정환직이 산남의진 이끌어 정용기 의병장이 순국한 후 그의 부친 정환직이 산남의진 총대장으로 추대되었다. 산남의진은 영 일 복동대산(北東大山)으로 이동하여 그곳에 근거 지를 마련하고 의병부대를 재정비하였다. 이때 정 래의는좌익장, 김일언은 도포장에 임명되었다. 이 후 청송의 보현산과 영일의 북동대산 일대를 근거 지로 의병전쟁을 전개하였다. 특히, 1907년 10월 9 일에 청하분파소를 공격하여 순검 1명을 처단하고 분파소를 소각하였다. 또 10월 21일(양력 11월 26 일) 흥해를 공격하여 우편취급소와 분파소를 불태 우고 취급소장 등 3명을 처단하였다. 11월 4일에는 신녕(현재 영천시 신녕면)을 공격하여 분파소에 보 관되어 있던 총기 등 60여 점을 노 획 하였다. 이튿날에는 의흥(義興)을 공격 하여 분파소를 불태우고 총 49자루를 확보하는 전과를 올렸다. 한편, 의병부대는 11월 7 · 8일 청송 두방리에서 주둔하고 있을 때 비가 내 려 화승총을 쏠 수 없었고, 탄약도 거 의 떨어지고 통신도 두절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일본군은 이틈을 노 려 기습공격해 왔다. 11월 8일, 청송 유전(楡田)에서 크게 교전하였으나 패 하고 말았다. 11월 10일에는 추격하는 일본군의 포 위망을 뚫고 보현산으로 모인 뒤 부대를 둘로 나누 어 하나는 청송으로, 다른 하나는 영일군 기계로 이 대장 정공(鄭公) 양세(兩世) 순국기념 산남의진비(경북 영천) 정환직 · 정용기 의병장 고택 충효재(영천시 자양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