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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나는 삶 이야기 • 김두식 서원대학교 교수(전 콜롬비아대사) 57 지난 5월 22일(월) 오후 김두식(金斗植) 서원대학 교 교수(전 콜롬비아대사)를 독립문 부근의 대한민 국순국선열유족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 이유는 지 난 5월 13일(토)부터 14일(일)까지 진행된 순국선열 유족회 임원들의 경북 안동지역 역사탐방에서 그와 동행하며 많은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강한 인상을 받 았기 때문이다. 그는 저명한 한말 의병장 이강년(李康秊) 의병부대 에서 참모로 활동한 김수준 의병의 손자였다. 그의 조부는 의병부대에서 활동하다가 일제 군경의 추적 을 받아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그의 부 친은 물론, 자신도 매우 어려운 처지에서 성장했고,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하며 노력한 끝에 외교관의 ‘꽃’이라는 특명전권대사 직책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 물로 생각되었다. 이러한 인연 등으로 그는 순국선 열유족회 이사와 광복회 대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에 그를 만나 집안의 독립운동과 이에 얽힌 이 야기, 외교관으로서의 공직 경험 등을 들어보는 기 회를 마련하였다. 그는 흔쾌히 면담을 수락하였다. “조부 순국 정신이 나를 단련하고 오늘날의 나를 만들어” 김교수의 조부 김수준(金守濬, 1879~1913) 선생 은 경북 예천 출신으로 1907년 3월 충북 제천에서 이강년 의진에 참전하여 종사(從事)에 선임되었으 며, 경상·강원·충청도 일대에서 여러차례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그러나 1913년 불행하게도 일제 당국 에 붙잡혀 재판도 없이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199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부친이나 주위 친지들에게 조부님 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있다면 간단히 해달라고 주 문했다. 그리고 부친이나 김교수의 생활, 성장과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물었다. 조부님의 의병투쟁 독 립운동과 순국 등이 김교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 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아버님으로부터 들은 얘기로는 조부 김 수준 님은 김해김씨 율은공파(栗隱公派) 17대손으로, 예천군 감천면에서 출생하셨고 집안이 유복하였다 고 해요. 한말 나라가 기울어 가는 상황에 이르자, 문 경에서 봉기한 이강년 의병진에 참여하셨죠. 『운강 선생 창의일록』에 조부께서 의병활동 중 일본군에 피체되어 처형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倭賊捕 擒不屈而死”). 아버님 얘기로는, 1913년 9월 잠시 비 밀리에 가족을 만나러 왔다가 동네 주민 밀고로 일본 순사에 피체되어 처형되었다고 해요. 현재 예천군 감 천면 장산동에 묘소가 있어요. 조부의 의병참여로 일 제 당국에서 많은 전답을 강제로 빼앗아 가고 문중사 람들이 일체 오지말라고 했다고 해요. 증조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할아버지 기일(제사날)에 어린 손자(아 버님)를 앞세워 제사를 지내면서 늘 통곡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집안 환경속에서 아버님은 남의 집에 서 일을 하면서 정말 어렵게 사셨어요.” 독립운동 가문의 어려움은 익히 전해들어 알고 있 었는데, 정말 이 말이 사실인 듯 했다. 조부의 순국과 집안의 몰락 환경에서 어린 시절이 실로 참담했다는 김교수. 그러나 김교수의 부친은 독립운동 집안임을 자랑스러워 했고, 고난의 삶을 살면서도 조부를 탓하 지는 않았다고 한다. “아버님은 집안환경이 좋지 않아 자신이 공부를 하 지 못한 것 때문에 저 보고 열심히 학문(공부)에 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