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page

50 2023년 6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어가 계급이 부위에까지 오른 이세영의 참여 는 의병부대에 큰 힘이 되었다. 1906년 5월 13일 그는 의병을 이끌고 서 천읍을 공격하였다. 관아에 돌입한 의병 부 대는 서천 군수 이종석을 감금하고 양총(洋 銃) 등 무기를 노획하였다. 다음날 비인을 함 락하고 남포에 가는 도중에 일본인 한 명을 체포하였으며, 남포 읍성을 공격하였다. 5일 간의 전투 끝에 그의 의병 부대는 승리를 거 두었으며, 남포 군수 서상희를 감금하고 관 군 31명을 의병진에 귀순시키고 군량을 확보 하였다. 그 후 남포 부근의 용동에서 일본인 석공 2 명을 체포한 후 총상을 입은 한 명을 총살하 였고 광천에서는 일본인 6명을 체포하였다. 이 지역에서는 유학자 서승태 의 권유를 받은 지역 부호 박익 병이 곳간을 열 어 의병에게 군 량미를 제공하 였 다 . 사 기 가 오른 홍주의병 은 결성군 방면 으로 진군하여 하루를 지내고 5월 19일 다시 홍주로 갔다. 의병대장으로 홍주성 공격 점령, 다시 뺏으 려는 일본군과 격렬한 전투 한말 중기의병의 대표적 항쟁인 홍주성 공 격은 장날인 1906년 5월 19일 개시되었다. 1 천여 명에 달하는 의병은 홍주의 삼신당리에 서 일본군과 싸워 이기고 구식 화포 2문을 선 두에 내세워 홍주성을 포위 공격하였다. 의 병의 우세한 공격을 당해내지 못한 일본군과 관군은 북문을 통해 덕산 방면으로 도주하였 다. 의병은 홍주성을 점령한 후 총기와 탄약, 그리고 우편국에 있는 금품을 확보하였다. 이후 민종식 의진은 총을 소유한 600여명, 창을 소유한 300여명, 유회군(儒會軍) 300여 명 등 모두 1,200여명으로 확대되었다. 민종 식은 곧바로 상주문을 작성하여 이민학에게 보내 고종(광무황제)에게 올리게 하였다. 그 내용은 을사오적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처단의 당위성 등을 담고 있으며, 거병한 이 유와 의병을 일으킨 뜻을 받아들일 것을 요 구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몇 차례의 일본 경찰과 헌병대의 공격에도 전세가 의병 측에 유리하게 전개되자 한국통 감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주차군 사령관에게 군대 파견을 명령하였다. 결국 5월 30일 사 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의 명령 을 받은 보병 60연대 대대장 다나카(田中) 소 좌는 보병 2개 중대와 기병 일부 소대, 그리 고 전주수비대 1개 소대를 거느리고 홍주성 을 포위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파견된 일본 정규군은 우세한 화력과 복원된 홍화문(홍주성 남문)과 홍주성  민종식 심문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