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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후기의병기 의병들의 국권수호 항쟁과 일제의 사법탄압 41 1907년 이후 의병판결의 추이 적 목적을 지향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내란죄로 처 벌 받아야함에도 전체적으로 내란죄보다 강도죄로 처벌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일제는 의병이 봉기하 는 상황을 정치적 사안이 아닌 ‘폭도들’이 준동하는 치안유지가 필요한 상황으로 인식하고자 했고, 그 결과 1907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하여 적용법리의 양상이 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제가 한국을 강점하면서 장악한 사법권을 통해 형법을 악용하며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세력을 억압 하고, 자신들 통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도구로 사 용했다는 점에서, 재판을 통한 의병 탄압은 폭압적 이고 ‘정당성’ 없는 식민지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 여주고 있다. 필자 김항기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근대사 전공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 · 대전대 · 서울예대 등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 구 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의병항쟁기 의병판결과 그 성격(1895~1915)」, 동국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 「《한성신보》의 의병보도와 그 특징(1895~1896)」, 『역사 와  현실』 116, 2020 ; 「대한제국기(1898~1908) 《제국신문》의 법제개혁론」, 『한국근현대사연구』 103, 2022 등의 논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