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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2023년 6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자랑스런 우리 것들 도록 보관하고 있다. 무망루란 병 자호란 때 효종이 볼모로 잡혀가 겪은 8년간의 고통을 잊지 말자 는 뜻으로 영조가 붙인 이름이다. 남한산성의 유적과 그 아픔 바로 옆에는 청량당(淸涼堂)이 있다. 이회(李晦)와 그의 첩을 모신 사 당이다. 이회는 남한산성을 축성 할 때 성의 동남쪽을 맡았던 공역 의 책임자였으나, 축성 경비를 탕 진했다는 무고한 모략을 받고 사 형을 당했다. 그의 처첩도 남편의 성 쌓는 일을 돕기 위해 삼남지방 에 가서 축성 자금을 마련하여 돌 아오는 길에 남편이 처형되었다 는 소식을 듣고 강물에 투신하여 자살하고 말았다. 나중에 모함으 로 드러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 어간 이회와 그의 첩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뜰 모퉁이에 매바위라고 불리는 검은 바위가 있었다. 이회가 참수당할 때 한 마 리의 매가 날아와 부근의 바위 에 앉아 사람들을 노려보다가 날아 갔다고 했다. 사람들의 시기와 질 투에 억울하게 희생된 그를 생각 하니 마음 한 구석이 숙연해진다. 인조 14년(1636) 봄, 조선은 형 제관계를 군신관계로 바꾸자는 후금의 요구를 물리쳤다. 국호를 대청(大淸)으로 바꾼 청 태종은 병 자호란을 일으킨다. 인조는 남한 산성으로 피신해 47일간 항거하 다가 싸움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 고 성문을 연다. 인조는 당시 한강 나루터였던 삼전도에서 청 태종 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이마를 땅에 닿는(삼배구고두례 三拜九叩 頭禮) 치욕적인 신하의 예를 올리 며 목숨을 구걸한다. 최명길의『지 남한산성 서문(우익문, 右翼門) 남한산성 수어장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