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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우리 땅 • 안동 이육사문학관 115 곳에 살았다. 이육사의 ‘광야’와 북만주 최후 의 항일명장 허형식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 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 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 게 하리라.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광야 (曠野)’라는 시다. 그런데 이 시에 나오는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실 제로 만주에서 치열하게 항일투 쟁을 벌이다 전사한 독립운동가 일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시인 이육사의 어머니 허길 (許佶) 여사는 북만주 항일무 장투쟁의 영웅 허형식(許亨植, 1909~1941)과 사촌간이었다. 때 문에 허형식과 이육사는 외당숙 과 외당질이라는 가까운 친척이 된다. 이육사의 외가는 대한제국 기에 크게 활약한 허위(許蔿) 의병 장으로 대표되는 저명한 항 일투 쟁 명문가였다. 특히 이육사는 의 열단이 중국에서 운영하는 군사 학교를 다녔고, 국내는 물론, 베이 징 등지를 왕래하며 항일투쟁에 투신했기 때문에 허형식의 북만 주에서의 항일투쟁 사실을 잘 알 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육사 의 독립운동과 체포 및 당숙 허형 식의 항일투쟁과 전사는 직접 · 간 접적으로 연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육사는 북만주의 드 넓은 평야지대, 광막한 광야에서 백마를 타고 동북항일연합군을 지휘하며 일제와 싸우던 당숙 허 형식을 ‘초인’의 이미지와 연결하 여 이 시를 완성했을 수 있다고 해 석할 수도 있다. ➐  육사의 외당숙 허형식  ➑  문학관 앞의 원천들. 도진순 창원대 교수는 ‘광야’가 육사의 고향인 이 곳을 상정했을 것으로 추론했다. ➑ 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