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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 순국선 열 독 립 항쟁사 65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기념사진 조선의용대 창설 기념 사진. 조선의용대에는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골 고루 참가하였다. 규모 생산 기관의 국유화를 강령으로 내세웠 다. 결성 이후 임시정부에 참여하지 않은 민 족혁명당은 1941년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광 복 직후까지 활동하였다. 중·일 전쟁 직후인 1938년 김원봉이 이끄는 민족혁명당은 중국 국민당 정부의 도움을 받아 중국 한커우에서 독립운동단체인 조선의용대를 조직하였다. 조선의용대는 중국 국민당 정부군과 함께 항 일 전쟁에 참가함에 따라 지도부를 제외한 대 부분의 세력은 조국 방향으로 북상 중 중국 공산당이 활동하는 화북 지방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조선의용대는 화북 지대를 결성하고 1940년대 초, 호가장 전투, 반소탕전 등 수많은 전투에 참여 한 후 중국 공산당 군대와 함께 활동하게 되었다. 1942년 조선의용대 잔여 세력은 한국광복군에 합 류하였고, 주력은 화북조선독립동맹이 지도하는 조선 의용군에 합류하였다. 독립항쟁세력의 재편 | 한국독립당과 한국광복군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독립운동 은 지역적 기반에 큰 변화를 겪었 다. 일제가 만주를 점령하고 스탈린 이 한인강제이주정책을 펼친 것이 그 원인이었다. 일제가 만주를 점령 한 뒤 지속적으로 이른바 ‘토벌작전’ 을 전개하자 만주 독립군들은 중국 관내로 이동하였으며 연해주 지역 의 한인들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 주 당했다. 만주와 연해주가 그 기 반을 상실하자 자연스레 중국 관내가 독립운동의 주요 근거지가 되었다. 지역적 기반이 변화하면서 동시에 독립항쟁세력도 재편되었다. 1940년 재건 한국독립당 조소앙, 조선혁명당 이청천, 한국국민당 김구 등은 민족주의 계열 3개 정당을 통합하고 김구를 중앙집행위 원장으로 하는 한국독립당을 새롭게 결성하였다. 한국독립당은 임시정부의 주도 하에 항일 민족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