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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신흥무관학교 교훈 1. 나는 조국을 광복코자 이 몸을 바쳤노라 1. 나는 겨례를 살리고자 이 생명을 버렸노라 1. 나는 후사를 겨레에게 맡기노라 1. 나를 따라서 조국과 겨레를 수호하라 신흥무관학교 교육목표 1. 불의에 반항정신 1. 임무에 희생정신 1. 체력에 필승정신 1. 고난의 인고(忍苦)정신 1. 사물에 염결(廉潔)정신 1. 건설에 창의 정신 정의 초등군사반을 두었다. 학교 운영은 대한제국 군대 출신의 신민회 회원들(이세영, 윤기섭, 여준, 김규식, 이장녕, 이관직, 김창환, 신팔균 등)과 1919년 만주로 망명한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군 인들(지청천, 김경천 등)이 중심이 되어 맡았다. 신흥무관학교는 1913년 신흥 중학교 설립 이후 약 7년간 2,4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며 이들은 홍범도의 대한독립군과 김좌진의 북로군정서에서 주요 역할을 담당하였다. 1920년 홍범도 가 이끄는 대한군북로독군부가 봉오동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자 일본군의 탄압이 거세지면서 결국 1920년 폐교되었다. 청산리전투와 민족독립항쟁에 미친 영향 │ 신흥무관학교 출신 독립군 북로군정서 연성사관학교가 1920년 2월에 창립되자 이장녕 등 신흥무관학교 출신 교관 150명이 파견되어 연성사관생도 300여 명을 속성으로 배출시키고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에 참여하여 1920년 10월,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각종 독립군 단체에 참여하여 항일투쟁에 혁혁한 공 로를 세웠다. 이후에도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의열단, 조선의용대 및 한국광복군 등에서 주축으로 활동하며 항일투쟁사에 영원히 빛날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신흥무관학교 출신(관련) 독립항쟁가 구분 신흥무관학교 출신자 명단 비고 한국광복군 지청천, 이범석, 김원봉, 권 준, 김학규, 송호성, 윤기섭, 오광선 등 의열단과 조선의용대 김원봉, 강세구, 권준, 김옥, 박태열, 배중세, 서상락, 신철휴, 윤보한, 이성우, 이 종암, 이해영, 최윤동, 한봉근, 윤세주 등 무오독립선언 이상용, 김동삼, 여준, 이동녕,, 이세영, 이시영, 이 탁, 허 혁 등 신흥무관학교 관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