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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순국선 열 , 의 숭고한 삶 217 ▒ 독립장│서 일(徐一) 서일 선생은 교육자이자 종교인 그리고 언론인이기도 했다. 그는 만주지역에서 항일무장투쟁을 가장 적극적 으 로 전개해 북로군정서의 총재로 청산리대첩을 지휘하기도 했다. 일제를 깨부술 수 있는 것은 힘뿐이라고 믿 었 던 젊은 혁명가, 그 힘은 강고한 정신력과 무장을 바탕으로 나온다고 생각했다. 교사로서 후학을 양성하며 계몽운동에 앞장서다 서일 선생은 1881년 2월 26일 함경북도 경원군에 있는 농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기학(蘷 學)이었지만, 나중에 일 (一)로 바꿨다. 18살까지 집 근처 의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신 학문에 뜻을 두고 서울에 있던 성 일사범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망명할 때까지 기록이 발 견되지 않고 있는데 아마 교사로 일했으리라 짐작된다. 당시에 조 국 광복을 위해서는 교육이 필수 청산리대첩 주도한 북로군정서 총재 겸 종교인 중광단을 조직해 독립군을 양성하고 중광단이 개편·확대된 북로군정 서의 총재로 청산리 일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 1881년 2월 26일 함경북도 경원 출생 ● 1912년 대종교 입교, 북간도일대 의병들을 규합하여 중광단 조직 ● 1920년 북로군정서(대한군정서) 총재, 대한독립군단 총재 등 역임 ● 1921년 8월 27일 밀산현 당벽진 마을 뒷산에서 자결, 순국 ●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핵심공적 주요약력 독립기념관의 서일 선생 어록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