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page

제 3 장 │ 순국 선 열 길 따 라 얼 따 라 103 무관학교 출신들은 북로군정서의 지휘관이나 대한의용군의 일원으로 홍범도 부대와 합류하여 청산 리전쟁의 최전선에서 온몸으로 전투를 치르며 빛나는 전과를 올렸다. 대한독립단의 창설 유적지, 유하현 삼원보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은 1919년 4월 15일 봉천성 유하현 삼원보(奉天省柳河縣三源堡) 에서 조직된 항일독립단체이다. 1919년 3·1 운동으로 일제의 탄압이 가중되자, 수많은 동 포가 만주로 이주하였다. 항일의병장 박장호 (朴長浩)·조맹선(趙孟善)·백삼규(白三圭)· 조병준(趙秉準)·전덕원(全德元)·박양섭(朴 陽燮) 등 각 단체대표 560여 명은 삼원보 서 구 대화사에 모여 각기 분립된 단체를 해체하 고 독립쟁취를 위한 단일기관으로 이 단체를 조직하였다. 대한독립단은 국내외 모두 100여 개소의 지단·지부를 설치하고, 만주지역에는 거류 동포 100호 이상을 구(區)로 하여 구관 (區管)을 두고 10구에 단장을 두어 자치행정을 실시하도록 하였다. 4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유적지 항일독립전쟁의 횃불, 봉오동 전투유적지 1910년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한 후 중국 만주지방으로 망명한 항일애국지사들 은 항일독립전쟁의 횃불을 들고, 서간도와 북간도 일대에서 독립군 부대를 창설하였다. 봉오동 전투 는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안무(安武)의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의용군, 최진동 (崔振東)의 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 신민단 등이 연합하여 결성한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가 1920년 6월 7일 두만강을 건너 북간도로 침입한 일본군에 맞서 북간도 봉오동 계곡에서 격렬한 전투 를 벌여 대승을 거둔 전투였다. 봉오동 전투의 시작은 1920년 6월 4일 대한독립군 소부대가 북간도 삼둔자(三屯子)를 출발하여 두 대한독립단 창설 유적 : 유하현 삼원보 대화사(大花斜) 대한독립단 본부 유적, 관전현 하로하 조선족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