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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12월31일 일요일 11 (제204호) 독자마당 박석무 다산연구소이사장 풀어쓰는 茶山이야기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이러다가는 나라가 위태롭지않겠느냐고걱정하는사람들이많습 니다.최고 통치자의 독단만 있지 협치나 토론 의 정치는 사라져 갑니다. 통치자의 불통정치 에 비판하고 경계하는 언로(言路)라도 열려있 어야 하는데 불통은 강화되고 언로까지 막혀 어둠의 그림자만 짙어가고 있습니다. 정책적 대결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책으로 상 대방을 이겨내는 경쟁의 정치는 사라지고, 진 영이 다른 반대당을 적으로 여겨 죽여야만 자 신의 당이 살아난다는 가장 나쁜 사고로 정치 를 하고 있으니 조용할 날이 없는 것이 오늘의 정치입니다. 이렇게 시끄럽고 위태로운 정치 현실, 언로 라도 제대로 열려 자유롭게 비판하고 옳은 방 향으로 인도해주는 구실을 한다면 얼마나 좋 을까요. 역사를 왜곡하고 굴종의 외교로 전쟁 위험만 가중시키고 있어도 비판보다는 한술 더 떠 잘한다고만 부추기로 있으니 세상에 언 론이 그래서야 되겠는가요. 고관대작으로 등 용되고 후보로 지명되는 사람들, 어쩌면 그렇 게도 적격자가 아닌 사람들만 연달아 임명되 는데,그냥보고만있고,전문성이있고적격자 라는임명권자측의주장만앵무새처럼그대로 보도해주는 언론, 그래서야 세상이 조용해지 고위태로움에서벗어날길이있겠는가요. 구시대, 어둡고, 미개했다고 비난하는 조선시 대에도,뜻있는 선비라면,임금에게올리는상소 에서, 한결같이 ‘광개언로(廣開言路)’라는 네 글 자를 빠뜨리지 않고 주장했습니다. 언론이 바르 고 공정하지 않다면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고 극 언을했던 사람이참으로 많았습니다.그래서고 려의 우탁(禹卓), 조선의 조헌(趙憲), 최익현(崔 益鉉)같은진실한충신들은도끼를들고상소를 올리며상소내용대로실행해주지않으려면도끼 로 자신의 목을 쳐주라는 ‘지부복궐(持斧伏闕)’ 상소까지 올리기도 했습니다. 공정한 언론, 비판 적이고시대를이끌어줄언론이어떤것인가를명 확히밝혔던다산정약용의언론관을알아봅니다. “언관(言官: 언론인)의 지위에 있을 때에는 아무쪼록 날마다 적정하고 공정한 의논을 올 려서 위로는 임금의 잘못을 공격하고 아래로 는 백성들의 숨겨진 고통을 알리도록해야 한 다.혹 사악한 관리를 공격하여 제거하는 경우 에는 반드시 ‘지극히 공정한 마음(至公至心)’ 으로 해야 한다.남의 잘못을 지적할 경우에는 탐욕스럽고비루하고음탕하고사치스러운점 만지적해야지편파적으로의리(義理)에만의 거하여자기와뜻이같 은 사람은 편들어주고 뜻이다른사람이면공 격해서 함정에 몰아넣 는식으로해서는안된 다.”(示學淵家誡) 지금부터 200년 전, 전제왕조국가의 선비 이던다산의언론관이나언론인에대한경계의 이야기를 되새겨야 할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의리에만 의거하여 당동벌이(黨同伐異)의 악 행은저질러서는안되다니오늘의무비판적언 론인에게 대한 경고가 아닌가요. 보수니, 진보 니,여당이니야당이니등의편가르기에의거해 서자기진영의잘못은눈에보이지않고반대진 영 잘못만 과장하고 왜곡하여 증오와 저주하는 논조만 이어가고 있으니, 아니 그런 것이 지공지 심이고불편부당한언론의정도이겠는가요. “이러다가는 나라가 망하리라”라고 외쳤던 반계븡성호븡연암븡다산 등의 실학자들의 외침을 잊을수없습니다.잘못을지적당함이무섭고비 판이두려워언론에재갈을물리는조치가남발 하고 있는 요즘,언론인들은 대오각성하여 다산 의언론관에마음을기우려주기바랄뿐입니다. 언론인은 지공(至公)해야 부산2030엑스포 유치전이 29대119라는 참 패로 막을 내렸다. 부산시장을 비롯한 많은 사 람들이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줄 몰랐다” “사 우디의오일머니공세로금전적투표가이뤄졌 다”“유치실패했으나부산의희망과비전을보 았다”는 평들을 내놨다. 초등학생 수준에서는 맞는말이지만,대학생은고사하고고등학생수 준에서만봐도유치하기짝이없는말들이다. 참패의 본질은 정부와 민간 유치위원회 지 휘부가“유치승리”라는고지점령에대한전략 전술 개념이전혀없는,싸움의기본도 모르는 초등학생 수준에서 덤벼들었다는 것이다. 그 러다 보니 싸우는 방법이 知彼知己와는 거리 가먼자기중심적우물안개구리식이었다. 전국의 상공회의소 간부들 해외 방문시키 고,대기업회장들이나라들방문하고,주한외국 대사들부산불러도와달라고하고,장관들과부 산시장이 나라들 방문하고,개발도상국들이 한 국에 로망을 갖고 있고, 가수들 등장과 부산 이 즈레디광고하면票가온다고생각한것이다. 사우디 오일머니는 처음부터 예상되었던 사 우디 핵심전략이었다. 유치위원회 지휘부는 처 음부터승부수가될것이라고깊이인식하고,어 떻게 하면 오일머니 공세를 이길까를 다각도로 강구 했어야했다.전 세계 150여 개발도상국 내 지小國들이아주달콤한오일머니유혹을떨치 고한국을찍어줘야할분명한명분을그들에게 주었어야박빙이라도되었을것이다.참패의원인은 사우디의오일머니를과소평가하고,외형적인겉치 례방문외교에만의존함으로써표밭인중앙아시아, 중남미,아프리카국가들을잡지못했기때문이다. 류성룡대감과징비록(懲毖錄)이높이평가 받는이유는무엇때문일까?필자는류성룡대 감이육군출신정읍현감이순신을수군함대사 령관전라좌수사로파격발탁했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23전 23승 이순신을 발탁한 그 혜안 을국민들이높게보고있다는것이다. 이순신이승리한전략은학익진이다.순간적 으로적을포위하여대포로격침시켰다.그때까 지 학익진은수군에서는불가능전략이었다.T V드라마에서 왜군장수가 학익진을 보고 조선 수군장수가바보라고했다.순간적인포위를생 각하지 못한 것이다. 이순신이 육군 출신이기에 포위전을수군에접목시켜허를찔러승리한것 이다.그때전라좌수사가수군출신이었으면학 익진전략은존재하지않았을것이고조선반도 는왜군에게완전히점령되었을것이다. 오일머니를누르려면사우디가꿈에도생각하 지못한 학익진포위전략을 병행했어야했다.필 자는대통령비서실과행정자치부등공직30년간 의경험을바탕으로2600여기업이코리안서포터 즈로 활동하는 외교학익진 설계도를 완성하였 다. 110개국 주한외국대사관을 돕는 외교자원 봉사활동(diplomatic volunteer)이다.외국대사관 과 외국정부에 情과 精 을 주어 부산엑스포 票 확보에 도움되도록 지 난해 12월부터 정부 고 위직과 民官유치위원 회,부산시등에건의했 다. 민간단체가 부산엑 스포 유치를 돕는 학익 진 포위전을 병행할테니 힘을 조금만 보태달라 고 누누히 설명하였지만 모두에게 거절당했고, 누구하나류성룡대감이되어주지않았다. 기회는왔을때잡아야하고,점령목표인高地 는반드시점령해야한다.그래서 전략과전술이 필요하고,그러한전락과전술을펼사람을앉혀 놔야고지가점령된다.“하는데까지해보고안되 어도 어쩔 수 없지”하는 지휘부와 “반드시 고지 점령을해야한다”고다짐하는지휘부간에는구 사하는전략방법이전혀다르다.고지점령전을해 본경험이거의없는산자부,외교부,부산시,대한 상의 라인들이 오일머니라는 사우디의 핵심전략 을과소평가한채겉치례방문외교에만매달려소 리만지르다나가자빠진형국이바로29대119대참 패이다.필자는2002년월드컵때막후PD를하여 한국팀이4강까지올라가게한경험이있었기에 InKorea외교자원봉사시스템학익진으로90여 개도국 정부를 설득해 일조하려고 하였으나 민 간의힘만으로하려니타이밍을맞추지못해기 여하지못했다.부산2030엑스포참으로아쉽다. 부산엑스포유치전에이순신장군의학익진병행했어야 박승주전여성가족부차관 왕조시대주권은왕에게있었다.왕이나 라 주인이었다. 백성들 또한 왕 소유권 중 하 나로왕은모든백성을자식으로생각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없듯 이 왕은 당연히 애민[愛民] 군주가 되어야 했다.그러나이러한말은빛좋은개살구에 불과했다.역사상우리나라왕들중세종을 빼고는 븮애민정책븯 을 제대로 실행한 왕은 거의 없었다. 영조,정조를 꼽기도 하지만 ' 세종의애민정책'에비하면새발의피다. 주권재민(모든주권은국민에게있다)의 민주공화국이 된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도 븮세종의애민정책븯예를찾아보기힘들다.세 계역사속에서도드물다.븮세종의애민정책븯 은요즘도보기드문 생명존중과사회적 약 자를 보호하는 공공선이 핵심이었다. 그런 세종의애민정책을살펴보자.븮임금의직책 은하늘을대신해만물을다스리는것이다.븯 [『세종실록』 1427년(세종 9) 8월 29일. 그중에서도븮노비는비록천민이지만,(이 들 또한)하늘이 낳은 백성이다.븯『세종실 록』1444년(세종26)7월24일] 세종은노비,노인,여성,아이등사회적 약자를정책에최우선으로두었다.또한이 들 삶의 질 향상은 임금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로 생 각했다. 세종은 지금 시각 으로보아도파격적 인 븮노비 출산휴가 정책븯 을 실시한다. 븮여종이아이를낳으면노비남편에게도30 일 휴가를 주어라.븯 [『세종실록』 1434년(세 종16)4월26일]당시노비들출산휴가는1주 일이었다. 세종은 산후조리를 하는데 1주일 은 충분치 않다며 노비들 출산 휴가를 100일 로늘리도록했다.또한산모혼자있으면그 산모를 누가 돌보겠느냐며 산모 남편도 30 일간각종부역을면제하여돌보게하였다. 이 놀라운 정책은 민주주의를 실시하 는 대한민국에서도 아주 최근에 와서야 생긴 정책이다. 그러자 양반이 들고 일어 섰다.노비들이 다 쉬면 집안일은 누가 하 느냐며 반발하였지만 세종은 뷺양반들은 노비들이 쉬어도 일을 해줄 사람은 많지 않느냐뷻며나무랐다는기록이남아있다. 세종의노인공경정책도본받을만하 다.븮나이많은사람을존경해야효도에대 한 풍속이 두터워진다.븯[『세종실록』1435 년(세종17)6월21일] 세종은90세가된천인에 게쌀2석(약2 88kg) 하사, 80세 이상 노인은 신분과 관 계없이양로연참석을가능하게했다. 세종은여성건강문제에도각별히신경을 썼다.그 예로 세종은 의녀제도 확장을 지시 한다.븮지역별로 여성 관리를 선발해 제생원 (의료기관)에서가르친후,부녀자를치료하 게 하라.븯[『세종실록』1423년(세종 5)12월 4 일]여자환자들이남자의사진찰을꺼려병 이악화되자전국적으로의녀제도를확대하 게 한 것이다. 세종은 버려진 아이돌보기에 도 나선다.븮아이들에게는 겨울철에 먹을 것 을 넉넉히 주고, 제생원에서 항상 관찰하게 하라.븯[『세종실록』1435년(세종17)6월22일] 세종은버려진아이들입양을자유로이허락 하고 아이 버린 자를 찾아 고발하면 포상하 게했다.세종은장애인들도 소홀히 하지않 았다.븮관현악기를 다루는 시각장애인 중 천 인인 자는 재주를 시험하여 채용하라.븯 [『세 종실록』1434년(세종16)11월24일] 이처럼세종은장애인을위한전문직업 까지 창출하여 일시적이 아닌 원천적으로 장애인 복지정책을 실행했다. 시각장애인 단체에는노비와쌀을적극지원토록했다. 세종은 어릴 적부터 오랫동안 너무 많 은 독서를 해서 세종 후반기에는 앞을 거 의 못 볼 정도 시각장애인이 되었기 때문 에 시각장애인에 더 각별했다. 세종 애민 의세심함은결혼지원정책에서도보인다. 븮가난하여 시기를 놓쳐 혼인하지 못한 사람은, 친족에게 함께 결혼에 대한 준비 를 하게 하고 곤궁함이 더욱 심한 자에게 는 관청에서 곡식을 주도록 하라.븯[『세종 실록』1435년(세종17)9월29일] 결혼을 못하는 청년들이 넘쳐나고 있 는 이 시대에 현 정치위정자들은 세종의 이런세심함을배워야할것이다. 세종의 애민은 범죄자들도 예외는 아 니었다.븮사형에 해당하는 죄는 세 차례에 걸쳐 정확히 조사해 아뢰게 하여라. 이는 사람목숨을소중히여겨,혹시잘못된것 이 있을까 염려하는 까닭이다.븯[『세종실 록』1421년(세종3)12월22일] 세종은 지금으로 말하면 삼심제인 3번 심판하는 븮삼복제븯를 시행하여 비록 사형 수라 할지라도 억울한 죽음이 없게 하였 다.그뿐만 아니라세종초기계속되는 흉 년으로 재정이 기울자 세종이 선택한 특 단의조치는왕족재산축소였다. 수양대군(세조)을 포함한 대군들 토지 를50결씩줄이고대군(왕의적자)최대2 50결, 여러 군(왕의 서자) 최대 180결, 자 손들의과전을법적으로제한했다. 세종은 지금 보아도 놀라운 정책인 국민 투표까지 실시한다. 세종은 토지법 제정을 앞두고는전국적으로관리를파견하여약5 개월에걸친국민투표로민심을파악했다. 세종은관리등용에도애민정책을실시했 다.세종은 천민출신 장영실을 등용해서 과 학기술을발전시켜농업생산력을증대시켰 다.세종은 극심한 가뭄에 기우제만이 해결 방법이아니라는것을알고천민출신이지만 과학에 뛰어난 장영실을 신하들 반대를 무 릅쓰고 등용했다.장영실은 이런 세종 뜻에 따라 자격루와 측우기, 해시계와 물시계를 만들어 냈고,우리 고유 독자적인 달력이라 할수있는천문역서인븮칠정산븯을제작한다. 그리고 세종은 원나라로부터 수입한 븮농상 집요븯라는 책을 참고해서 우리나라 농촌 현 실에 맞게 체계적인 영농법 연구를 바탕으 로쓴책인븮농사직설븯을편찬하여농업생산 에서혁신이일어나게한다.븮세종의애민정 책븯의결정판은븮훈민정음창제븯이다. 한자만을읽고쓰던조선지배층인양반 들은 백성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 지 식이 깊어지고 힘이 커질 것을 두려워해 백성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을 원 치 않았다. 이런 신하들 거친 반대로 한글 은 거 의 세종 혼자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 훈민정음 반포문에도 세종의 애민정신이 뚜렷이남아있다.이처럼세종은1419년~1 450년 제위 32년 동안 세종이 꿈꿔온 목표 는 생생지락 즉 모든 백성이 행복하게 사 는 것이었다. 정말 세계적으로 극히 드문 애민군주참모습을세종이보여주었다. 모든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 시대인요즘대통령들에게도찾아보기힘든 세종의 애민정신에 또 실천한 애민정책이 있었다.오백년전세종처럼오늘날우리정 치권 위정자들이 세종처럼 사회적 약자들 삶을븮십분의일븯이라도생각하여애민정신 을애민정책으로승화시킨다면우리국민들 삶이훨씬더윤택해질수있을것이다. 생각해 본다. 주권재민 민주주의 시대 선출직으로 나서는 모든 이들이 세종 애 민정책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며 나서는 것일까?아님오로지권력에대한집념일 까? -세종의애민정책과주권재민시대위정자들- 박 철 홍 전남도의회前의원븡담양군종친회사무국장 나의조상,뿌리를찾아서븣 우리는 흔히 사람을 처음 만날 때 첫인사로 통성 명을 한다. 그러다가 성씨가 같으면 다음으로 본관 이어디냐고묻는다.본관과중시조(中始祖)가같으 면 오랜만에 먼 친척을 만났다고 한층 친밀감을 표 한다.이러한 점에서 동·서양의 인식 차이를 확연하 게느끼게해준다. 현재나의존재를있게해주신부모님과조부모,더 나아가증조부까지는뵙거나아니면부모님을통해서 구전으로어렴풋하게기억하고있는것이오늘날현대 인들의 조상에 대한 인식 범위이다.그 이상은 족보를 통해서먼조상의뿌리를찾아야겨우접근할수있다. 이에보편적이고일반적인상식으로우리나라의성씨 (姓氏)와족보(族譜)를간략하게설명하고자한다. 우리나라 성씨는 한자 문화와 함께 시작되었으 며, 삼국시대부터 본격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 사기와 삼국유사 등에 의하면 신라유리왕 9년(A.D 32.)임진년 봄에 6부의 이름을 고치시고 [6부장에 게] 성(姓)을 주시어 이씨(李氏), 최씨(崔氏), 손씨 (孫氏), 정씨(鄭氏), 배씨(裵氏), 설씨(薛氏), 6성 (六姓)이 되었다. 그리고 고구려의 건국 시조인 주 몽(朱蒙)은 국호를 고구려라고 하였기 때문에 고 (高)씨라고하였으며,충신들에게는극(克)씨,중실 (仲室)씨, 소실(小室)씨를 내려주었다고 전해진다. 백제의 시조인 온조(溫祚)는 부여계통에서나왔다 하여 성을 부여(扶餘)씨, 여(餘)씨로 표기하는 등, 이와 같이 고대와 삼국시대는 부족국가 시대부터 성을왕족중심으로사용한것으로추정하고있다. 그리고고려시대에와서태조왕건은개국공신들과 지방의 토호세력들을 통합, 관장하기 위하여 전국의 군현(郡縣)을개편하면서성씨를하사하였고,이때부 터 우리나라의 성씨 제도가 체계적으로 확립되었다. 조선시대초기에는성씨가양민에게까지도보편화되 었으나, 아직 노비와 천민계급 등은 성씨를 사용하지 않았다.그러나1909년새로운민적법(民籍法)이시행 되면서모두가성과본을가지도록법제화가되었다. 족보(族譜)는성씨와관련하여빼놓을수없는자 료의하나로시조(始祖)부터역대조상의얼과정신 이 담겨져 있는 귀중한 자료로써 나와 집안의 뿌리 를알수있는소중한가족역사책이다. 그래서사람들은족보를대대로집안의보물처럼소 중히간직하였고,마치살아계신조상을대하듯이중요 하게여겼다.이처럼소중하게여겨온족보가해방후의 서양문화의 유입과 자본주의, 산업사회로 인한 핵가 족화가 되면서 마치 봉건사회의 유물로만 생각하고 도외시하는 경향이 팽배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피 는물보다진하다는말에서도보듯이족보는피의기 록이며,혈연의역사이다.우리나라족보문화는세계가 부러워할정도로체계적이다.우리나라는계보학의종 주국이라할만하다.우리조상들은족보를목숨처럼소 중히 지켜왔다.이러한 정신은 후손으로서 자랑스러운 전통으로이어가야할책임과의무가있다고생각한다. 족보의 유형으로는 대동보(大同譜), 종보(宗譜), 세보(世譜), 파보(派譜), 가승보(家乘譜), 계보(系 譜),가보(家譜)와가첩(家牒)등이있다. 첫째,대동보(大同譜)는같은시조아래에각각다 른계파와본관을가지고있는씨족을함께수록하여 만든족보책을말한다.둘째,종보(宗譜)는본관을단 위로같은씨족을족보책으로한가문의역사와집안 의 역사와 집안의 계통을 수록한 책이다. 셋째, 세보 (世譜)는 세지(世誌) 한 종파 또는 그 이상이 같이 수록되어 있거나 한 종파만 을 수록한을 말하며, 합보 (合譜)라고도 한다. 넷째, 파 보(派譜)는시조로부터시작 하여 한 종파만의 이름과 벼 슬,업적등을수록한책이다. 파보는 시대가 변천함에 따 라증가 되어가고,본관과성 씨외에지파의중시조와내용면에서는족보와다름없 다.다섯째,가승보(家乘譜)는본인을중심으로수록하 되시조로부터자기의윗대와아랫대에이르기까지이 름과업적,전설,사적을기록한책으로족보편찬의기 본이된다.여섯째,계보(系譜)는한가문의혈통관계 를 표시하기 위하여 이름자만을 계통적으로 나타낸 도 표로서 씨족 전체 또는 부분만 수록한 것이다. 일곱째, 가보(家譜)와 가첩(家牒)은 자기일가의 직계에 한하 여발췌한세계표(世系表)를가리킨다. 이상과 같이 조상의 범위에 따라 족보의 유형도 달라지고, 시대의 변천에 따라 족보의 필요성도 달 라진다. 오늘날은 족보의 활용이 적지만 족보의 수 록 여부에 따라 자신의 뿌리를 찾고,정체성을 확립 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는 것 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이렇게 성씨와 족보에 대 해서살펴보았는데,이어서조상에예(禮)를다하는 제향(祭享)에 대해서 밀성박씨 충헌공 후(后)참찬 공파를기준으로알아보고자한다. 제향은어느성씨나대부분이시조,관조,중시조, 파조, 가승의 순으로 지낸다.우리 박씨의 제향순서 를 보면 첫째로 시조왕을 모신 숭덕전에서 매월 초 하루와보름에분향(焚香)을하고,정월초와동지에 답례와춘,추로제향을올린다.둘째로관조를모신 밀성재는 익성사에서 초하루 보름 분향을 한다. 그 리고매년음3월3일과9월9일에제향을올린다.셋 째로중시조를모신경모재에서매년10월3일에제 향을 올린다.넷째로 파조를 모신 경기 화성의 사효 재에서 제향을 올리는데, 이는 대부분 중시조을 기 준으로 파조의 시제일이 정해진다. 다섯째로 자기 가승보에 의해 5대조 이상의 원조(遠祖)의 시향(時 享)봉행하는것이일반적인제향순서의식이다. 공자께서는“재계(齋戒)하실때는반듯이깨끗한옷 으로갈아입으시는데,베로만들었다.재계하실때에는 반드시음식을바꾸시며,거처함에반드시자리를바꾸 셨다.”(『논어』 「향당편」 제7장 : 齋必有明衣 布 齋必變 食 居必遷坐)이렇게 공자께서는 재계에 임하는 태도 와절차가어긋남이없으셨음을알수있다.이는아무 리빠르게변화하는시대라고해도누구나조상에제향 을올릴때에는이와같은마음이어야할것이다. 현재우리나라는GDP순위가세계12위이며,1인당 국민소득은6위에살고있는선진국으로향하고있다. 이러한환경에서나의뿌리,성씨와족보에대해조금 이라도관심을같는다면물질중심사회에서조금이나 마정신적가치를찾아가는계기가될것이다. 이제 첫 인사에서 통성명을 나눌 때,박씨라면 어 디 박씨냐고 묻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무슨파인지, 또 몇 대손인지 등까지 이야기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보다 친근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대다수 사 람들이 본관과 파조를 물으면, 잘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에서 중시조를 정확히 알고, 파조 를 아는 사람은 그만큼 뿌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 람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뿌리를 잊지 않고 살아간 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정체성을 확립한 성숙한 의 식의소유자라고할수있기때문이다. 밀성박씨충헌공파대종회장박각준 뱚발뱞뱞행뱞뱞인:박순구 뱚취재편집:박상섭 뱚경영지원:박재기 기사제보븡광고신청븡구독안내 대표전화(053)588-7300 FAX(053)581-0067 뱚구독료년40,000 입금계좌:농협453013-55-000691 예금주:한빛신문 뱚뱜 42612 대구달서구달구벌대로1221(이곡동538-2)성창B/D5층 뱚뱜 본지는신문윤리강령및그실천요강을준수합니다 (2007년1월12일등록번호대구다-01225) 500만박씨성손의대변지 2007년1월24일창간(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