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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 [인민군복 위장 나주경찰부대 민행의 증언기록] "막둥아, 엄마 있냐?" "예." 1950년 7월 25일 이웃집에 사는 해남경찰서 고형사가식전에 찾아와 김경예의 어머니 김 문신을 찾았다. 무슨 얘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은 꽤나 진지한 이야기를 주고받 았다. 잠시 후 김문신은 딸 김경예(당시 17세)에게 "막둥아, 느그 오빠 데려온나"라며 심 부름을 시켰다. 김경예는 해남읍 해리 남의 집 곁방살이를 하고 있던 오빠 김재수(당시 35세로 추정) 에게 달려가 평동리 본가로 데려왔다. 집에서 기다리던 고 형사는 김재수를 부엌으로 데 리고 가 속닥였다. 그날 오후였다. "막둥아, 느그 오빠 점심 차려라." 김경예가 고봉밥과 김치를 개다리소반에 얹는 찰라 에 나주경찰부대원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군화를 신은 채 무턱대고 안방에 들어갔다. "가 자!" 어머니 김문순과 오빠김재수가 엉겹결에 떠밀려나왔다. 김경예가 뒤쫓아가자 김문 순은 "막둥아, 느그 오빠 신이나 갖고 온나"라고 했다. 김재수는 경찰의 총구에 떠밀리느 라 신발도 신지 못했다. 차마 변소통에는 못 들어 가겠더마 김경예가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 신발을 챙겨 몸을 돌리는 순간, "탕"하는 소리가 마 을을 뒤흔들었다. '설마!'하는 불길한 생각을 하면서 김경예는 어머니가 있던 곳으로 갔 다. 하지만 그곳엔 오빠가 없었다. 다만 오빠가 서 있던 자리에는 핏자국만이 보였다. "엄마, 어떻게 된 거야?"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진 김문순이 입을 떼려는 순간 "탕" 소리가 이어졌다. 김문순이 총을 맞고 고꾸라진 게 먼저인지, 김경예가 정신이 나가 쓰러 진 게 먼저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잠시 후 김경예가 눈을 뜨니 "우리는 아무 죄가 없어라"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탕 탕." 금속 파열음 소리는 귀를 찢는 듯했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김경예는 가까운 집으로 무작 정 뛰었다. 고형사 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