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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 있었다.……중략……영국사람으로서는 넬슨과 어깨를 견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기란 항상 어렵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인정할 만한 인물이 있 다면 이순신은 한번도 패배한 일이 없고 전투중에 전사한 이 위대한 동양 의 해군사령관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것이다”라고 평하였다. 이순신이 전사한 데 대하여는 후대인들의 많은 의문을 자아내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리에 불과한 것이며 확실한 근거는 없다. 이순신은 글에도 능하여 『난중일기(亂中日記)』·시조(時調) 등의 뛰어난 작품을 남겼 으며, 특히 진중(陣中)에서 읊은 시조들은 우국충정이 담긴 걸작품으로 꼽 히고 있다. 이순신이 전사했다는 소식이 조정에 전해지자, 선조는 관원을 보내 조상 하고 우의정에 추증하였다.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에 녹훈되고 덕 풍부원군(德豊府院君)에 추봉되었으며, 좌의정에 추증, 1793년(정조 17) 다시 영의정이 더해졌다. 묘는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어라산(於羅山)에 있으며, 왕이 친히 지은 비문과 충신문(忠臣門)이 건립되었다. 충무의 충렬사(忠烈祠), 여수의 충민 사(忠愍祠), 아산의 현충사(顯忠祠) 등에 제향하였는데, 이 중에 현충사의 규모가 가장 크다. 현충사는 조선 숙종연간에 이 고장의 유생들이 이순신의 사당을 세울 것을 상소하여 1707년(숙종 33)에 사액(賜額), 입사(立祠)되었다. 그 뒤 일제강점기 때에 동아일보사가 주관하여 전국민의 성금을 모아 현충사를 보수하였고, 제3공화국 때 대통령 박정희(朴正熙)의 특별지시에 의하여 현충사의 경역을 확대, 성역화하고, 새로이 전시관을 설치하여 종 가에 보존되어 오던 『난중일기』와 이순신의 유품 등을 전시하였다. 그리고 이순신의 일생과 중요 해전을 그린 십경도(十景圖)가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