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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 당포해전 다음날 이순신의 함대는 가박지(假泊地)인 창신도(昌信島)를 떠났다. 다음날 당포 앞바다에서 왜선이 거제로 향하였다는 정보를 받고, 즉시 전함대에 거제 출격을 명하고 발선(發船)하려는 때에 전라우수사 이 억기가 전선 25척을 이끌고 이곳에 오자 매우 반갑게 맞았다. 5일 아침 전선 51척과 중·소선 수십척의 연합함대는 일제히 거제로 향 하였다. 이때 피난민으로부터 거제로 도피하였던 왜선단이 다시 당항포로 도주하였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이순신과 이억기와의 연합함대는 바로 길 을 바꾸어 당항포로 향하였다. 당항포 내만(內灣)에는 왜의 대선 9척, 중 선 4척, 소선 13척이 정박 중이었다. 조선수군의 내습을 발견한 일본수군은 먼저 공격을 가해 왔다. 아군의 전선들은 적선을 포위하고 먼저 거북선을 돌입시켜 맹공을 가하였다. 이 싸움에서 왜군은 대패하였고 왜선은 모두 소실되었다. 이와 같이 이순신은 해전에서의 연전연승으로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승 계(陞階)되었다. 그 뒤 다시 선제공격으로 거제·가덕에 출몰하는 일본수군 을 격멸하기 위하여 우수사 이억기에게 작전을 전달하고 연합함대의 조직 을 통첩하고, 7월 6일 전라좌·우수군이 일제히 출동한 뒤 노량해상에서 경 상우수사 원균의 전선 7척과도 합세하였다. 이때 일본군은 해전에서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하여 병력을 증강하여 견 내량(見乃梁)에는 적장 와키사카[脇坂安治] 등이 인솔한 대선 36척, 중선 24척, 소선 13척이 정박하고 있었다. 이순신은 견내량이 지형이 좁고 활동 이 불편하다는 판단 아래 장소를 한산도로 물색하였다. 약간의 판옥선(板屋船)으로 일본의 수군을 공격하면서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한 뒤 학익진(鶴翼陣)을 쳐, 일제히 총통(銃筒)을 발사하는 등 맹렬한 공격을 가하여 층각선(層閣船) 7척, 대선 28척, 중선 17척, 소선 7척을 격 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