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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선민족해방전선 전사의 눈빛이 아니라 바로 햇빛 바른 고향집 마루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동생들을 바라보는 큰오라비의 눈빛이었다.”(소설가 공선옥, ‘내가 만난 김남주’, 2000년) 그런 자리에서는 으레 노래를 청하게 마련이었는데, 김남주는 마지못한 듯 일어나서 18번을 불렀다. 남인수의 ‘고향의 그림자’. “찾아갈 곳은 못 되더라 내 고향 버리고 떠난 고향이길래 수박등 흐려진 선창가 전봇대에 기대서서 울 적에….” 지그시 눈을 감고 구슬피 노래를 부르던 시인. 그가 “오월 어느 날이었 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5월 어느 날 밤이었다”로 시작되는 ‘학살’을 썼고, “미군이 없으면/ 삼팔선이 터지나요/ 삼팔선이 터지면/ 대창에 찔린 깨구락지처럼/ 든든하던 부자들 배도 터지나요”(‘다 쓴 시’)를 썼으며, “나는 이제 쓰리라/ 인간의 눈이 닿는 모든 사물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조국은 하나다’)를 쓴 바로 그 시인이었다. 그리고 그는 죽었다. 죽어서 광주 망월동 묘역에 묻혔다. 세월이 살같이 흘러 21세기 어느 날, 미국이 벌인 지난 세기의 가장 야만적인 전쟁을 견 뎌낸 베트남의 해방전사 출신 한 시인이 그를 찾았다. 그는 절을 하고 나 서 한편의 시를 바쳤다. “사람들이 당신은 돌산처럼 강하다 했다/ 나는 믿지 않는다/ 돌산도 석 회처럼 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당신은 강철이라 했다/ 나는 믿지 않는다/ 강철도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당신을 정신이라고 이상(理想)이라고 말할 때/ 그것을, 나는 믿는다./ 정신은 불 이 붙어도 타지 않고/ 단단한 도끼날 앞에서도 휘어지지 않는다.”(반레, ‘시인 김남주를 생각하며’) 김남주는 이미 국경을 뛰어넘어 자유를 사랑하고 역사의 진보를 믿는 이 들의 영원한 벗이 되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