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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 『전라우수영지』(1787)에 의하면 영내의 민호는 620호, 수군 장졸의 병 력은 1,085명을 보유하였다. 한편 본 영의 관할구역은 시대에 따라 변화가 있었으나 임란 이후부터 한말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나주·영광·함평·무안·영 암·해남·진도 등 7관을 속읍으로, 관내의 속진으로는 금갑도·남도포·어란 진·고금도·신지도·마도진·목포진·이진진·다경포·법성포·임치진·지도진 ·주도 진·금모포·고군산·선산진·흑산도·청산진·가리포 등 19진이었다. 임진왜란 때는 전라우도 연해지역 14관을 관할하였을 만큼 전시에 있어 서 본영의 군사적 규모와 역할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 전라 우수영의 군비로는 관사로서 내아 제승당 등 26개소의 각종 당청과 중요 시설로 선청과 집회소 또는 회의장소로 이용된 12개소의 누정이 있었다. 중요시걸로 선창을 두었는데, 성남문밖에 석축으로 만든 4개소의 항구 시 설이었다. 군선으로는 전선 2척·귀선 2척·해골선 ·방골선이 각 1척·병후선 8척 등 모두 17척을 보유, 여기에 사부·화포수·타공·웅고·기라졸 등의 수군을 배치 하였다. 수군절도사는 무관 정3품이었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본영의 수사 김억추는 통제사 이순신과 더불어 명량대첩 을 거두었는데, 명량은 본영 선창으로부터 불과 5리도 떨 어져 있지 않은 급조류의 해협의 천험의 관방을 이룬 곳이다. 우수영의 축성은 설치 위치로는 해안성, 축성재료로는 토성과 석성의 혼합성, 평면형태로 사각형과 원형의 중간형태인 부정형성, 축성방법으로 는 편축에 해당 된다고 할 수 있다. 성돌의 크기는 일반적으로 아랫 쪽은 150㎝ 이상이 되는 것들도 있으나 올라가면서 50㎝에서 30㎝ 정도 로 작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