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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 문준용을 비롯한 50여 명의 주민을 삼산면 창리 남산뫼 중턱에서 총살했 다. 비슷한 시기에 해남읍 금강굴에서도 희생이 있었다. 송지면 산정지서는 10월경 주민들을 산정국민학교에 모이게 한 후 주민 들에게 자수를 권유하였다. 자수한 주민들과 이후 연행된 주민들 400여 명이 산정지서 옆 5개의 창고에 분산 감금되었다. 이들은 11월 12일경 대 부분 산정리 산진목, 어불도 앞바다, 치소리 쑥고개, 해원리 연골 골짜기 등에서 집단살해되었다. 현산면에서는 1950년 11월과 1951년 1월 집중적으로 사건이 발생했다. 현산지서는 1950년 11월경 주민들을 일평리 현산지서 옆 창고에 감금했다 가 딱골재, 배암골, 두모리 바닷가, 일평교 위 산기슭 등에서 총살했으며, 11월 5일 구산리 박진채 등 20여 명의 주민들을 월송리 딱골재에서 총살 했다. 11월 7일에는 공북리 김만수 등 30여 명의 주민들을 두모리 바다에 수 장했는데, 이때 고현리 윤씨 등 2명이 살아 돌아왔다. 일평리 이성준 등은 11월 15일 양곡창고 인근 소나무밭에서 희생당한 사실이 확인된다. 화산지서는 주민들을 유치장과 해창리 창고 등에 구금했다가 해창리 나붓 재와 구시리 뒷산, 정머리 뒷산, 마명리 입천골 등에서 총살했다. 평호리 송평마을 박창규 등 13명은 해창리 창고에 20여 일동안 감금되었다가 1950년 11월 6일경 해창리 나붓재에서 희생당했다. 11월 10일에는 송산리 최은상 등 30여 명이 같은 장소에서 희생당했으 며, 11월 19일에는 월호리 김일이 같은 장소에서 희생당했다. 송산리 최연 석은 11월 5일 현산면 구시리 뒷산에서 총살당했다. 관동리 이동욱은 마 명리 장터 원두막에 갇혀 있다가 11월 8일 석정리 검더굴 도랑에서 총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