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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 명의 주민들이 무이리 골짜기 등에서 희생되었다. 1950년 12월 6일 계곡 지서는 갇혀 있던 장소리 해주마을 주민 10명을 성진리 월암고개에서 총 살했다. 월암고개에서는 1951년 1월 10일과 15일에도 희생사건이 있었음 이 확인된다. 1월10일 사건당시 월암고개에는 성진리 주민들을 포함하여 8명의 시신 이 있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가학리, 장소리, 여수리에서 주민들이 희생 된 사실이 확인된다. 마산지서는 자수하거나 체포된 주민 50여 명을 면소재지인 화내리 마산 지서 유치장과 소방대 창고에 감금했으며 11월 7일 이중 20여 명을 화내 리 두드럭재에서 총살했다. 노하리 붉은데기에서는 11월 12일 홍광표가 주도하는 대한청년단에 의 해 37명이 희생되었으며 11월 16일에는 4명이 경찰에게 희생되었다. 문내면에서는 우수영지서가 12월 6일 연행한 주민들을 율돌목 야산에서 총살한 사건이 확인되었다. 당시 경찰은 구덩이를 2개 팠으며 50여 명의 주민들을 학살해 그 자리에 매장했다. 희생자들의 시신은 5일 뒤 수습할 수 있었다. 이 사건 희생자로 확인된 심동리 이명준은 인민군 점령기 마을 주민들의 추천으로 리 인민위원장에 선출되었는데 원만한 일처리로 피해 본 마을 주민들이 없었다고 한다. 북평면 남창지서는 감금했던 주민 60여 명을 집단학살했다. 평암리 김 천희 등 남창지서에 갇혀 있던 수십 명의 주민들이 10월 26일 남창리 붉 은잔등 굴속에서 함께 총살되었으며, 이동호 등 용일리 청년 7~8명이 10 월 31일 월송리 좌일장터 인근 새노재 다리 밑에서 함께 총살되었다. 같 은 시기 김봉현 등 내동리 주민 40여 명의 좌일지서 뒤 오십이재에서 희 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