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page

2023년5월31일 수요일 7 (제197호) 관향조 종친회 2019년 착공한 당진군 면천면 성상리 583-11 면천박씨 성지 면천대가 마지막 공사였던 배수 로공사와 진입로 포장을 마치고 지난 4월 하순 준공허가를얻으면서그면모를드러냈다. 고려개국공신 면천군 박술희 장군을 추모하 고 4천여 성손들의 요람(搖籃)으로 자리한 당 진의 면천대는 의정부시에 있는 설단과 모형을 같게 하고 보령에서 생산된 오석으로 5m의 비 신과쌍용으로조각된비수를올려웅장함이드 러난다. 전면에는 장군의 관직과 시호, 휘자를, 뒷면에는공의공적을측면에는공의후예의유 래를새겼다. 6억 여 원 사업비가 소요된 면천대는 후손들 의 정성어린 성금이 있어 가능했다. 이에 조만 간 헌성비를 세워 그 송조정신을 기릴 계획이 다. 지난달29일개최된정기총회및면천군박술 희장군추모제향은전국에서50여성손이참여 한가운데1부정기총회2부추모제향으로진행 된가운데정기총회에앞서경석회장은코로나 19로 인해 대종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한 가운데에서도 면천대 공사는 차질 없이 진행되 어준공허가를얻게되었다며향후신라만고충 신 관설당 박제상 선생의 충절에 관한 자료와 시조인 면천군께서 고려태조에게 전수받은 훈 요십조 등을 돌에 새겨 이야기가 있는 명소로 만들어갈수있도록할것이라고밝혔다. 청흠 명예회장은 면천박씨와 대종회의 역사 를설명하고오늘을계기로더욱발전하는대종 회가되길바란다고하였다. 정기총회 주요안건은 △2022년 사업보고 및 결산보고△정관개정△회장및임원승인의건 으로사업보고및결산보고는면천대공정별지 출 결산으로 원안 가결하고, 정관개정의 건은 제9조(이사회 구성과 소집 및 의사) 종전 이사 회는50인(100인)이내의이사로구성되며,제12 조(부회장) 본회에 10인(20인) 이내의 부회장 을두도록했다. 임원개은 2022년 초 갑작스럽게 쓰러진 연용 회장의 잔여임기동안 직무대행을 맡아온 경석 수석부회장을 회장으로 추대하여 이날부터 임 기를 시작하고 연목, 경호 현종을 제25대 감사 로순정현종을수석부회장으로추대했다. 2부 추모제례에는 청흠 명예회장이 집례를 맡아 집전한 가운데 경석 대종회장, 순정 수석 부회장, 관흠 현종이 각각 헌작하고 본보 상섭 국장의 독축으로 엄숙 봉행하고 멀리 진도에서 찾은 경주박씨 춘파공파 진도문중 회장이 첨작 했다. 면천박씨 득관조(得貫祖 諱 述熙)는 시조대 왕 휘 혁거세(諱 赫居世)의 25世로 파사왕(婆 娑王,신라 5대왕)의 후손이며, 신라 충절의 대 명사인관설당박제상(觀雪堂朴堤上)의 9世로 서 삼중대광(三重大匡)휘 득의(諱 得宜)의 아 드님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호협하고 용맹스 러우며특히신의가출중하였다. 고려태조(중시조님사진)왕건(高麗太祖王 建)을도와후삼국통일(後三國統一)과 고려창 업(高麗創業)에 크게 공을 세웠으며.그후太祖 가 승하하실 때에는 편전(便殿)으로 친히 불러 후사(後事)를 부탁하며 훈요십조(訓要十條)를 전수(傳授)했다고한다.이후,오직高麗太祖와 2代 혜종(惠宗)을 위하여 온갖 충성을 다 하다 가 정치적 딴 뜻이 있는 간악한 무리들에 야합 하지 않고 끝내 이들에 의하여 현 강화도 갑곶 (甲串)에서희생되었다. 그후 정국(政局)이 안정되면서 사필귀정으 로무고임이밝혀져모든관직이회복되고엄의 (嚴毅)라 시호(諡號)를 받고 혜종묘정 (惠宗廟 庭)에배향(配享)되었다. 고려 말에 이르러 국운(國運)이 쇠약하여 이 성계(李成桂)가 조선을 세울 때 당시 공조전서 (工曺典書)였던 휘심(諱諶-中始祖諱述熙의 17世孫)은 두문동(杜門洞) 七十二賢의 一員으 로고려(高麗)의부흥을꾀하다가결국힘이모 자라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로 해주(海 州)땅에은거(隱居)하며절의(節義)를지켰다. 매일 도읍지였던 개성의 송악(松岳)을 기리며 절을올리던모습은일배송경조알도(日拜松京 朝謁圖)에 담겨져 지금도 전해지고 있으며 그 산은 고려산(高麗山)이라 불려 지다가 지금은 그 일대가 고산면(高山面)이라는 행정구역이 되어있고 沔川朴氏의 집성촌 (集姓村)으로 되 었다한다. 이보다 앞서 전서공(휘 심)의 숙부 휘 윤성 (允成)은충북보은으로낙향한바있어면천박 씨는크게황해도해주문중과충북보은문중으 로나누어진다.6·25동란에해주의일가분들이 대부분 월남하여 보은의 일가분과 만나 1970년 5월10일서출종묘에서대종회를창립하였고,1 757년최초족보를수보한후2006년8간하여지 금에이른다. 면천박씨대종회定總성료 면천군박술희장군시향제관,사진왼쪽부터경주박씨진도문중박종온회장(첨작),박경석초헌관,박순정아헌관,박관 흠종헌관박청흠집례,박상섭축관순. 면천대준공및면천군추모제향봉행 고려조의 보문각 태학사이며 전문형(典文衡, 정2품)과 중국 元나라에서 한림학사(翰林學士) 를 지내고 귀국하여 벼슬이 평장사(平章事)에 오르고, 밀성부원군(密城府院君)에 봉해진 후 사후 충정(忠靖)의 시호(諡號)가 내려진 행산공 (휘 세균)과 그의 아들 아들 도은공(挑隱公, 휘 文彬)과 소감공(少監公,휘 文翊)삼부자 춘향이 지난 달 29일(음3.10)밀양시 부북면 행산재에서 봉행되었다. 이날 제향은 전일 입재하고 일부 종원은 아침 일찍 도착하여 개좌를 열어 박권필 대종회장을 직일로 추대하고 공사원(公事員)에 수옥, 수경, 번, 정웅, 봉호 현종을 조사(曹司)에 홍주, 을수, 동구 현종을 각각 추대하여 제관을 분정하고 오 전 9시 우천으로 인해 행산재 정당에 마련된 제 단에서 병승 前 아달라왕릉 참봉의 집전(執典) 으로 40여분에 걸쳐 진행된 가운데 먼저 행산공 단소의 제관은 연희, 병섭, 하웅 도은공 제관 토 열,광호,정호.소감공제관권식,창열,경수순으 로 초헌, 아헌, 종헌관으로 헌작하고 병찬, 경호, 래석현종이축관으로소임을다했다. 권필 대종회장은 개좌 전 인사말을 통해 일기 불순한데도불구하고추원보본의정성을다하기 위해 찾아준 일가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고 말 하고 천권을 배부할 때는 각자 맡은 소임을 다해 제례를빛내줄것을당부했다. 행산재는 1955년(乙未) 3월 종중 원로인 봉희 (鳳熙)현종의발의로전종원의성금과연금(捐 金)으로 단비 삼좌(三坐)와 주택(住宅)정침(正 寢) 4칸을 구입(購入) 개수(改修)하여 행산재 (杏山齋)라편액(扁額)을달았다. 1964년갑진(甲辰)정월달에당시종회에서재 사(齋舍)가 협애(狹隘)함을 절감하고 전종원의 성금으로 정당 오칸(행산재), 동재 4칸, 대문3칸 으로 확장 중건하여 동재를 효우당(孝友堂), 대 문을동원문(同源門)이라편액하였다. 1983년 계해(癸亥)8월 종의에 의하여 전 종원 의 헌성금으로 서재 4칸을 증축하여 치각실(致 慤室)이라편액을달았다. 이후 수차에 걸쳐 보수를 하였으나 본재가 오 랜 성상을 지내는 동안 건축년도에 비해 빨리 노 후(老朽)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에 체목 이 부식(腐 蝕)되어 누수가 잦아 2007년 10월 추 향 때 종회 총회를 열어 행산 재사를 중건하기로 만장일치 의결을 본 이후 동년 12월 17일 추진위 원회를 구성하고 각 종중별 모금 목표액을 책정 한이후3년여만에대망의준공을보게되었다. 행산재 중건 과정을 보면 경이롭다고 해야 할 것 같다.최초 창건때 부터 동·서재와 공궤청,관 리사 모두 종원들의 십시일반 모아준 성금으로 지었다.2011년 준공을 가진 중건 또한 종원들의 성금으로 이루어졌다.보통 독지가가 있어 몇 억 씩 후원하여 재사를 짓는데 반해 50여 대소 문중 과1,300여종원이참여하여그의미가남다르다. 한편 행산공파는 2018년 대동보 수단을 접수 하여지난해말마루리하여전14권1질로하여지 난달 반질을 마무리했다.이 과정에 거제도에 거 주하는 진수 현종이 무보수로 프로그램을 짜고 전산입력 등을 도맡아 헌신하면서 전자족보와 함께 훌륭한 족보를 출간하게 되어 많은 종원들 의찬사가이어졌다. /자료제공박경택행산공파홍보이사 밀성박씨행산재춘향봉행 절의정신의표상이고효(孝)의 본보기가된삼부자븣대동보반질마무리 행산재제관,왼쪽부터권필대종회장,연희,병섭,하웅,토열,광호,정호,권식,창열경수현종 박권필회장이박연희초헌관에게천권(薦券)을전달하 고 있다. 전남고흥과경북경산전북부안등에큰집성 촌을이루며지역간친목을돈독히하고있는밀 양박씨 참판공파 세일제가 지난 4월 26일 오후2 시 전북 완주군 용진면 삼산리 관전마을 각시산 선영에서봉행되었다. 재균 전 회장의 집례로 시작된 이날 제향은 상 하로 모셔진 부자의 묘소와 제단에서 창홀에 따 라 질서정연하게 제관들이 맡은바 소임을 다하 면서추원보본의정성을다하는것을엿보였다. 제례 후에는 정기총회를 갖고 수입 및 지출 등 결산과 추진중인 파보 편찬에 대한 보고가 이어 진 가운데 종성 회장은 아직 수단을 제출하지 않 은 문중은 조속히 제출하여 주시어 훌륭한 파보 가만들어지도록협조를당부했다. 참판공은규정공(휘현)의현손으로호조참판 을 지낸 휘 눌생(訥生)으로 자는 돈지(惇之) 호 는운수(雲 쑴 )이다.호조전서(戶曹典書)휘침의 3남으로고려공민왕갑인년(1374)에출생하여1 5세부터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문하에서 수 학(受學) 하였으며 1409년(조선 태종9년) 36세 에문과에급제훈련원판관(訓練院判官)을시작 으로두루요직을거쳐세종때에훈련원지사(訓 練院知事)와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지냈으며 1 449년(세종 31년)8월 7일에 하세하니 향년 76세 였다. 배위는 중추부사(中樞府事) 허해의 따님 이다.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에 증직(贈 職)되고 시호(諡號)는 충간(忠簡)으로 고흥(高 興) 숭양사(崇陽祠) 경산(慶山) 율산서원(栗山 書院)장흥(長興)세덕사(世德祠)에배향(配享) 되었다. 아드님인 충양공(忠 翔 公)의 휘는 경신(諱 景 愼)으로 자 는 자흠(子欽)이고 호는 둔수(遯 쑴 ) 로배위는정부인경주이씨이다.1414년(태종14) 에출생하여1438년(세종20)25세에 등제(登第), 경주판관(慶州判官), 1453년(단종) 훈련원사직 (訓練院司直)으로 재직 중 세조의 왕위찬탈에 종형(從兄)청재공(淸齋公諱審問)과함께단종 (端宗) 복위(復位)에 뜻을 같이 하여 곧은 마음 과 숨은 절개는 생육신과 비유되었다.묘소는 全 州 東十二里 소양산 (韶陽山) 표동(瓢洞) 계좌 (癸坐)이나 실전(失傳) 선고묘하(先考墓下) 설 단(設檀)하였다.철종(哲宗),병진(丙辰)1866에 비로서호조판서(戶曹判書)를증직을받고충양 의시호(諡號)를받았다. 한편 이날 제향 제수는 고흥문중에서 준비하 였으며, 그동안 제복으로 관복을 착용하였으나 도포로 일괄 교체하여 어느 때보다 제례가 돋보 였다. /박방무명예기자(경북경산시지부) 밀양박씨규정공후참판공·충양공부자(父 子)세일제봉행 훌륭한파보가만들어지도록협조당부 참판공세일제가지난달26일봉행된가운데제향후제관들이기념촬영을하고있다.사진왼쪽부터참판공제관초 헌관형일,아헌관종성,종헌관병민,집례재균,충양공제관형상초헌관,수정아헌관,병길종헌관,병인축관. 제향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