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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原高句麗碑保護閣建立記(중원 고구려비 보호각 건립기)
이 비는 입석마을의 표상으로 오랜동안 마을 어구에 서 있었던 것을 충주지방 문화재애호 동호인들의 모임인 예성동호회에서 찾아 학계에 알려 79년 4월 8일 단국대학교 학술조사단(단장 정영호박사)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고구려비」임을 고증하였다.
첫째 석비 서두에 「고려대왕」이란 명문이 보이고
둘째 「전부대사자 사자」등 고구려관등이 보이며
세째 광개토왕비문에서와 같이 「고년 수성」명이 보이고 비형도 광개토왕비와 흡사하며 자체도 고졸한 예서풍이다.
네째 「과인삼백신라토내 과인신라토내」라는 명문이 보이는데 이는 고루려에서 신라를 가르키는 것으로 풀이 할수있다.
다섯째 삼국사기에 의하면 장수왕은 재위79년간(413~491)에 평양천도를 비롯하여 한강유역까지 이르는 전성기를 이루었다
이런 점으로 미무러 보아 5세기 후반에 있어 한강유역을 따라 상류에까지 척경하고 이곳에 그 기념적인 석비를 세움이 가능하였던 것으로 본다.
이 비는 한국 유일의 고구려비로서 우리 민족의 보배일뿐만 아니라 조상의 빛나는 얼을 되색여 보는 국보로서 소중하게 보존하고 계속 연구할 귀중한 역사적 자료이므로 81년 3월 18일 국보제205호로 지정하고 4천만원을 투입 중원군에서 81년 월에 보호각을 세웠다.
서기 1981년 12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