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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4월30일 일요일 2 (제196호) 기 획 무안박씨대동보 편찬안내 무안박씨대종회는제53차정기총회(2022.5,4.)에서대동보편찬을정식가결 하였기에공고하오니단 기간에수단이정비되어우수하고귀중한족보가편찬되어자랑스럽고손색없 는최고의족보를후세의 유산으로물려줄수있도록많은협조를부탁드립니다.특히어느문중이든보 학상식이출중한어른들 이작고하면서이번대동보가마지막족보가될우려가있어종원여러분들의 적극적인참여로누보되 는종원이없도록하여주시고,누보의귀책사유는수단을접수하지않은종원 에있음을알려드립니다. ○발행기간:2022년5월4일~2023년 4월30일(수단종료/인쇄제본/발행까지) ○반질(頒帙):2023년5월부터 ○발간기준:1984년12월1일발행(甲子譜) ○ 수단접 수처 : 무안박씨대종 회 및 각파, 지 구 종 회 문의대종회장010-2674-2470 사무총장(실무자)010-5230-5592 ○ 수단접 수요령 : 대종 회 실 무자와 각파, 지 구종 회 통 해 접 수 가능 합니 다. ※ 금 번 발행되 는 완벽 한 족 보는 전 자족 보로 옮 겨 져 청 소 년 들이 보 다 더 쉽 게 족 보를 이 용 하게 됩 니 다. 그러나 책 족 보가 완벽 하지 못 하면 전자족보 또한부실할수밖에 없음을 명심하시어 책족보에 만전을기해주시길간곡히당부드립니다. 2022.9.23. 무안박씨대동보편찬위원장박형준 대종회장박중환 사무총장박형식 경북 청도지역에 큰 집성촌을 이 루고임진왜란에14의사가창의토적 하며 지역의 토반으로 책임과 의무 를 다해온 밀성박씨 소고공파 종친 회(회장 원현) 정기총회가 지난 7일 오전 10시 30분 이서면 용강서원 강 당에서 80여 종원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어 경과·감사보고에 이어 용 암공 후(后) 국현 현종을 신임 회장 으로추대했다. 이날 총회는 2017년 후 코로나19로 인해 총회를 개최하지 못해 2017년 4월 23일부터 2023년 4월 6일까지의 수입과 지 출결산으로잔액2천6백여만원이보고되었다. 원현 회장은 회의에 앞서 코로나19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뵙게되어반갑다고말하고종중의발전을위해최선을다하 자고 하였으며, 금년 89세의 고령임에도 함께한 윤탁(병재 공 后)현종은 조상대대로 세거지에서 함께해 온 우리는 수 백년숭조하며애종을실천해왔다고말하고세월이흘러많 은 변화가 있었으나 숭조에 각별히 노력 해 달라고 당부했 다. 이어 인묵 현종(국헌공 후)은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란 다며덕담을건넸으며,지난지방선거에종중의지지속에서 도근소한차로낙방한권현전군수후보는부끄럽고면목이 없다그러나종중을위하는일에는최선을다하겠다고하였 으며, 3월 조합장선거에서 서청도농협 조합장으로 당선된 욱현조합장과본보순구대표이사발행인은종중이더발전 하는데함께하겠다며인사를전했다. 한편남현전남해왕릉참봉은감사보고에서집행부의노 고를치하하고종원들의적극적인협조를당부했다. 소고공박건선생의청도입향과정착과정을보면탁영김 일손이청도교수직으로있을때향교를중수하면서남긴븮중 수청도학기븯(重修淸道學記)에서 “본군의 학교는 다섯 번이 나옮겼지만자리를정하지못한채사찰을빌려사용하다가 국초에 와서 지금의 자리에 세울 수 있었는데, 경상도 도사 박융선생이큰힘을썼다”고한바가있다. 이처럼박융이청도와인연을맺었던것이곧그의차자였 던 소고공 박건이 청도로 입향 한 계기가 아닌가 한다. 당시 청도에서 큰 세력을 유지한 이가 병조판서 김철성(金哲誠) 이었는데,소고공박건이그의딸과혼인을계기로청도밀성 박씨 소고공파를 여는 입향조가 되었고,현재 청도 수야4리 에 해당하는 지대(池臺) 일원을 김철성에게 상속받았던 것 으로알려지고있다. 소고공 박건은 무과를 통해 입사 하였다. 족보에 의하면, 禦侮將軍(정3품)으로훈련원봉사와용양위부사직(종5품) 을지냈다고한다. 청도 입향조 박건은 아들 박승원을 두었는데, 그 역시 무 과를 통해 입사하여 어모장군(禦侮將軍, 정3품) 충순위 부 사직을역임하였고,사후忠順公시호가내려졌다. 박승원은밀양에서이주해온아버지박건의기반과또외 가인 판서공 김철성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물려받았고, 또 진주하씨경절공하숙부딸과의혼인을계기로경제적배경 을더욱공고히할수있었다.당시청도수야지역의광활한 농장을소유했던경절공하숙부는아들이없었다.따라서그 의재산이사위인박승원에게거의상속되었던것으로보인 다. 박승원의 장자 박하담의 문집 븮消遙堂逸稿븯에 의하면, 지 대(池臺)는 중외조(重外祖) 判書金公(金哲誠)에게, 노비 (奴婢)는 외대부 경절 하공 하숙부(外大父 敬節 河公, 河叔 溥)에게서 물려받았다 한다. 이리하여 박승원은 아들 삼형 제 이름을 河淡·河淸·河澄으로 지었는데,이는 외가인 진주 하씨를잊지말라는뜻을담은것이었다. 부사직 승원의 장남 하담(河淡)은 중종 11년(1516년)에 사마시에합격한후유일로천거받아현량과에추천되었으 나 응시하지않고청도의 운문산아래의눌연(訥淵)에정자 를짓고소요당이라이름하고당대의거유들과교류하며여 생을보냈으며,차남하청(河淸)은호가성와(城窩)이며,예 조정랑을역임하고지평에추증되었다. 소요당의 장남 영(潁)의 호는 성효재(誠孝齋)로 순릉참 봉을 역임하였으며, 참판에 증직되었고, 아들 경신(慶新), 경인(慶因), 손자 찬(璨), 우(瑀) 숙(琡), 지남(智男), 철남 (哲男), 선(瑄), 차남 이(視 )의 호는 모재(慕齋)로 장사랑을 역임하고 참판에 증직되었으며, 아들 경전(慶傳), 경윤(慶 胤), 경선(慶宣)과 손자 린(璘), 구(球), 성와공 하청(河淸) 의손자근(瑾)등14명이운문산일대에서창의의깃발을올 렸다. 청도지역이왜군에의해함락되자비분강개하여4월23일 에이들14명의형제숙질이거느린가노(家奴)100여명을동 원하여 창의를 논의하면서 전호(佃戶, 소작인)를 포함하여 200명 이상의 군사를 확보하여 활동의 시작하였다.이때 인 근지역의재지사족과지역민에게통문을돌려산속에숨어 있지말고,의병에참여할것을종용함으로써4월말경에는 피난민 등을 합쳐서 500여명으로 진영을 갖추어 나갔다. 이 후 지역의 명망 있는 사족(士族)들을 유사(有司)로 임명하 여의병활동을주도해나갔다. 의병의 군사규모가 늘어남에 따라 전투를 효율적으로 수 행하기 위해서 군대를 조직화하고 군무를 분담시킬 필요성 이 있어 5월 2일에 의병부대를 조직화하고 박경전(朴慶傳) 을 의병대장으로 하고,대장(代將)에 박경인(朴慶因),아익 장(亞翼將)에 박경윤(朴慶胤), 박경선(朴慶宣) 복병장(伏 兵將)에 이정욱, 김계후, 정희호 야격장(夜擊將)에 배원우, 유격장(遊擊將)에이경,수문장에정광필로각기부서를정 하였다.이밖에도 박선(朴瑄),박찬(朴璨),박지남(朴智男), 박철남(朴哲南), 박린(朴璘),박우(朴瑀), 박구(朴球),박숙 (朴琡),박근(朴瑾)이함께보좌하며많은전공을세웠다. 한편 용강서원은 소고공의 후예들이 1590년 묘소아래 묘 재(墓齋)를 창건하여 용강재라편액한 것이 시초이고,대원 원의 훼철령으로 훼철되었다가 용강서당으로 자질과 지방 교육을맡아왔다.이후1992년향중의 공의(公儀)로송은 선 생의 영당을 여충사로 용강서당은 용강서원으로 개편되었 으며 14의사의 묘정비와 사당 충열사가 있어 매년 3월 5일 춘향은 본손, 9월 5일 추향은 유림들이 향사를 이어오고 있 다. 밀성박씨소고공파종친회정기총회성 료 신임회장박국현현종추대븣매2년주기친목행사가져 박원현회장 전북장수군계남면침곡리요전마 을주민들은충주박씨화계(휘상석) 선생을추모하고정신을계승하기위 한 ‘요전경독사숙기념비’를 마을 입 구에세웠다. ‘요전경독사숙기념비’는1930년봄 에 화계 박상석 선생의 주창으로 동 민과 인근 유지들이 뜻을 모아 경독 사숙(耕讀私塾)을 세워 가혹했던 일 제강점기 우리글과 문화를 말살하려 는 일본에 맞서 국어, 국사, 한문, 예 절을가르쳤고,광복후에는정부에서 실시한성인교육으로이어져옛터까 지함께지도한결과상·하동남녀노 소 모두 백점을 맞아 전국 수석으로 대상을 받는 등 문풍을 크게 일으켰 다.그리고 밤낮 없이 책을 끼고 사시 는 부모님을 따라 자연스레 독서를 즐기는자녀들은성공으로이어져인 근 마을의 부러움을 샀다. 이에 교육 을통하여민족의식을고취하면서낮 에밭 갈고밤에 글읽는 지혜와근면 정신을길이이어가고자면지와군지 그리고 향교지와 사숙안, 강록(講 錄), 구재록(鳩財錄) 등 국사편찬위 원회 조사 기록에 근거해 비를 세우 게 된 것이다. 이번 세워진 ‘요전경독사숙기념 비’는 1998년 인근에 세워진 ‘화계선 생강학비’ 부근에 세워졌는데 풍수 지리적으로 보면 좌청룡에 강학비가 우백호에 경독사숙기념비가 세워져 주민들은 이 또한 선생과 주민들의 홍복이아닌가말하고있다. 화계 선생은 1894년(고종 갑오) 12 월 26일 요전리에서 농와(聾窩)박치 종 선생의 장자로 태어났으며, 충주 박씨고려부정공휘영의23세손이다. 1900년 7세 되던해 탄재(坦齋) 박 선생에게 천자문을 배웠고, 다음해 정월에 도보로 전주 탄재 선생을 찾 아뵙고1박후귀가하였고,송산의묵 재(默齋)김선생에게수학하면서조 석으로 혼정신성(昏定晨省, 부모를 잘 섬기고 효성을 다함)을 게을리 하 지않았다. 1908년 15세에 천천 쌍암리의 백암 노 선생에게 중용을 배우고 25세에 계남 향약을 조직하였다. 36세에 전 주 흠재(欽齋) 최 선생에게 나아가 배웠으며,37세에요전경독사숙을 설 립했다. 1936년 장수향교 전교에 추대되어 대성전, 명륜당을 중수하였으며, 동 서재와사마재문루를중건하고담장 을 증축하고 충복비각, 논개비각 중 건 등 많은 업적을 남겨 향교가 국보 로지정되는발판을만들었다. 1962년 68세에 화산사를 창건하였 고, 군내의 여러 서원을 복설하고 청 양 모덕사(慕德祠) 장의에 추대되었 다. 1974년 81세까지 교육을 통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예속(禮俗)을 돈독하게지키며성현의도(道)를이 어 후학을 양성하는데 평생 정력을 쏟고 그해 10월 22일 돌아가시니 문 인들이 화계집 7권을 펴내고 존양계 를 조직하여 매년 3월 20일 선생의 학 덕을기리고있다. 한편 이번에 세워진 ‘요전경독사 숙기념비’는 청소년들을 위해 한글 과 난해한 글은 한문으로 병행하여 기록하였고,큐알코드를만들어쉽게 볼수있도록하였다. ▶3월호 6면의 상·하 남녀노소를 상·하·동 남녀노소로 용와박치종선 생을농와박치종선생으로바로잡습 니다. 전북장수군계남면요전마을 ‘요전경독사숙기념비’세워 전북장수군계남면요전마을입구에세워진두비석은강학비는좌청룡요전경독사숙기념비는 우백호의길지에세워져지나가는길손을잡는다. 화계박상석선생기려븣1998년강학비에이어 화계박상석선생 큐알코드를촬영하면쉽게볼수있다. 後孫忠州朴洙燮(癸卯年正月) 원파박수섭 ▶충주박씨전북장수生 ▶성균관전학전인겸자문위원/벽계시회회장/박씨 장수군회장/장수향교전교 [창간16주년하례]崇慕始祖시조를숭모함 寂天宮裏(요적천궁리) 천궁은고요하고쓸쓸하더니 太陽夢卵警(태양몽란경) 태양이알꿈꾸고크게놀라네 赫光周照世(혁광주조세) 붉은빛인간세상두루비추자 萬物一時生(만물일시생) 만물이한꺼번에소생하누나 뱚 ※2월호1면,太陽卯夢警(태양묘몽경)을太陽夢卵警(태양몽란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