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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역사를 이은 우리민족이 일제침략으로 국권을 빼앗겨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일제의 식민지화되면서 자유는 박탈되고 문화는 말살되었다. 일제의 무단통치와 혹독한 헌병경찰의 지독한 탄압은 더욱 심해졌다. 그같은 고난속에서도 자유창조와 개혁의 민족적 맥락을 계승해온 우리 민족은 굽히지않고 조국광복을 위하여 국권회복운동을 꾸준히 전개하였다. 시대의 이운에 맞추어 1919년에 거족적으로 3.1운동을 이르켰으니 민족의 염원인 국권회복을 위한 독립운동으로 확산되었다. 기미년 3월 22일 구 통진 월곶면 거주 성태영, 백일환, 박용희, 이경덕등이 주도가되어 각부락주민들을 장날인 3월 22일을 기하여 집합하게하고, 수백군중이 태극기를 휘날리며 대한독립만세시위행진을 하였다. 그때 성태영은 면사무소 높은 단상에 올라가 독립운동의 취지를 선언하려하자 왜경이 달려와 연설하는 성태영을 끌어내리려 할때 군중속에 있던 백일환이 뛰쳐나와 왜경의 따귀를 때리고 땅에 내동댕이 친 다음 왜경의 총과 칼을 빼앗으니 모자는 진흙에 굴렀다. 이 광경을 본 군중들은 흥분이 되어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일경주재소와 면사무소로 돌진하여 순사, 면서기 5인에게 독립만세를 부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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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조강리에 거주하는 조남윤, 최우석, 최복석, 당인표, 임용우, 민홍기등이 3월 29일 오전 11시 구 통진에 집합 독립만세를 부르자는 격문7통을 작성하여 각 동리에 배포하였다. 3월 28일에는 조강리 윤종근, 정인교, 민창식, 윤열규, 조남선등이 마을사람 수십명과 통진 뒷산 함반산에 올라가 횃불을 올리며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약속한 3월 29일이 되자 월곶면 주도인물이 군하리에 모여 수백군중과 함반산에 봉화를 올리니 모든 마을에서 이에 호응하여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이토록 숭고한 애국선열의 자주독립정신을 영원히 계승하고 자손만대에 기리고자 군민들이 정성을 모아 유서깊은 이곳에 3.1독립만세운동유적기념비를 세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