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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곶면 3.1만세운동 월곶면 만세운동은 경성 이화학당 학생이었던 이살눔(본명 이경덕)이 독립선언서 수십장을 옷 속에 감추고 고향인 군하리로 돌아와 각 면의 유지인사에게 비밀히 비포하면서 시작되었다. 선언서를 받은 성태영, 박용희, 조남윤, 윤종근, 최복석등은 각기 동지를 규합하여 태극기를 만들고 의거할 것을 결의하였다. 월곶면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은 여러 곳에서 일어났다. 3월 22일 오후 2시 백일환, 성태영, 윤종근, 민창식, 정인교, 조남윤, 이병린 등의 주동으로 4백여 명이 면사무소에서, 28일 밤에는 정인교, 민창식, 당인표등의 주동으로 수십 명이 함반산에서 횃불시위를, 29일 오전 11에는 조남윤등이, 오전 12시에는 최복석, 임용우, 윤영규등의 주동으로 갈산리에서, 4월 9일에는 덕적도에서 월곶면 출신 임용우등의 주동으로 수백 명이 각각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만세운동으로 인하여 조남윤, 최우석, 최복석, 윤종근, 이병린은 각각 징역1년을 선고 받고, 윤영규는 징역 8월, 이살눔, 정인교, 민창식은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임용우는 인천경찰서에 구금되었다가 5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일제의 가혹한 고문으로 옥중에서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