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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 다. 침묵을 깨고 과거사 왜곡발언에 대한 보도를 언론탓이라고 황당한 주장을 하였다. 김 위원장은 YTN과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언론의 잘못된 보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4·19혁명에 대해선 '민주주의 혁명이 맞는다' 고 생각한다며 기존입장을 바꿨다. 다만,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지향한 건 더 잘살아보기 위해, 즉 산업화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기주장을 합리화하는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였다. 김광동 2기 진실화해위원장 은 '배고파서 우는 백성이다'라는 것은 4·19 단체들이 얘 기한 것이지 제가 얘기한 것이 아니다. 잘사는 번영체제를 만드는 토대를 다지기 위해서 민주 체제를 지향했다는 것이다. 김위원장은 4·19 참가자들부터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면서 '그것이 광범위하고 포괄적으로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엉뚱하 게 4.19 단체에게 화살을 돌렸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5·16 군사쿠데타가 4·19 혁명 을 계승했다는 주장은 이번에도 굽히지 않았다. 80년 5월, 광주에서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주장 역시 그대로였다. 故 조비오 신부 재 판에서 헬기 사격 존재가 확인된 것 아니냐고 물었지만, 사법부 판결을 부정하는 혹세무 민(惑世誣民)하는 발언까지 서슴치 않았다. 김광동 2기 진실화해위원장은 한술 더 떠 법원에선 5·18에서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하던데 법원 판결문을 한 번 다시 읽어보면 그게 사건의 진상을 밝힌 법원 판결문인지... 아리송한 말로 얼버무렸다. 북한 개입설에 대해선 북한이 여러 사건에 관여하고 개입을 시도했던 만큼 광주 민주 화운동 과정에도 그런 시도가 있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거라고 주장했다. 윤대 통령 추념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부분이다. 최근 '위안부 존재를 검증해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이제봉 진실화해위원 후보 자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은 개인 의견 표명을 놓고 손가락질해선 안 되며 사회적 지탄대 상이 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 국회부결권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부결된 이제봉을 적극옹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