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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 비극의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그들의 아픔은 닮아 있었다. 구 감독이 학살사건 조사를 하며 서명을 받다 보면 두 유족 모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해 글을 몰라 서명할 줄 모르는 분들이 많았다. 유족들의 삶은 너무나 고달팠다. 아직도 지하방을 전전하는 이들 이 많았고, 식모살이하며 근근이 버틴 이들도 많았다. 구 감독은 “배고픈 이들이 배고픈 이들의 사정을 안다고 이런 어렵고, 한 많은 지난 세월이 두 유족을 이어주는 끈이 되기 도 해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2009년 전남 화순에서 전국 최초로 좌와 우를 가리지 않 고, 양쪽 유족이 모두 참석하는 합동위령제를 연 이후 조금씩 다른 지역으로도 퍼져나가 고 있다. 구 감독은 최근 또 민간인 학살을 주제로 한 다큐를 준비 중이다. 미니 다큐 형식으로 제작할 예정인데, 유족들이 증언하실 수 있을 때까진 계속 영상을 찍는다는 계획이다. 이 를 위해 CMS 후원도 받고 있고, 지역 촬영에 동행해 함께 취재에 나설 시민 출연자도 모집하고 있다. 구 감독은 “시민 출연자가 민간인 학살 관련 조사를 하는 과정도 담을 생각이에요. 이런 방식을 통해 한 명이라도 더 관심을 가지게 하려는 겁니다”라고 자신 의 구상을 이야기했다. 이런 구 감독의 노력에도 진실은 여전히 묻혀있다. 학살에 가담했던 이들은 ‘우리가 있 었기에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라고 학살을 합리화하며 오랜 기간 침묵하다가 지금은 거 의 세상을 떠났다. 피해자 유족들은 평생 자신이 빨갱이가 아님을, 빨갱이 후손이 아님을 증명받기 위해 심지어 ‘태극기 부대’가 되어 거리에 나서기도 한다. “옛날 세상 돌아올까 싶어서 겁이 나는 기라” 여전히 세상이 두려운 유족들 그들을 위해 오늘도 카메라를 드는 구자환 감독 윤석열 정부가 집권한 뒤 친북세력 척결을 이야기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이야기한다. 극 우주의자들의 입에선 여전히 ‘빨갱이’라는 소리가 쉽게 흘러나오고 있다. 세상은 여전히 무섭다. 며칠 전 도봉산에 오른 구 감독은 쌓인 눈에 쓰인 ‘북진 통일’이라는 글귀를 보 았다. 영화 태안에 등장하는 유족이 지적하듯, 지금 전쟁이 일어난다면 과거와 같은 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