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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忘室記(불망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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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맹자는 공자가 우인(虞人)을 칭찬한 "지사는 시신이 도랑에 버려짐을 잊지 않고, 용사는 자기 머리를 잃을 것을 잊지 않는다."라고 한 말을 인용하여 제자인 진대(陳代)가 제후들을 만나 보지 않는다고 비난한 것을 물리쳤다. 난세를 당하여 출처와 거취를 절도에 맞게 하려 한다면 죽음으로 의리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공자와 맹자가 특별히 두 가지 '불망(不忘)'의 교훈을 내세워 보여준 까닭이다. 출처와 거취가 어찌 벼슬한 자에게만 해당되는 일이겠는가? 초가집에 살고 베옷을 입는 미천하고 궁핍한 자일지라도 일거일동, 음식먹는 것도 출처와 거취가 아닌 것이 없으니 어찌 소흘히 할 수 있겠는가.
오호라, 세상에 변란이 일어난 때로부터 내가 어찌 하루라도 살고 싶었겠는가? 그러나 스스로 생각해볼 때, 다른 나라의 신하와 종이 되지않고 우리 땅에서 나는 것을 먹는다면 스스로 분수를 편히 여기며 사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어쩌다가 변란이 더욱더 심해지고 일이 더욱더 어긋나서 우리 땅에 나는 곡실을 공출하도록 강요하고 식량을 배급하였다. 먹는것을 자유롭게 할 수 없고 의리상 욕을 당할 수 없어서 나는 쟁기와 보습을 버리고 토실(土室)에 숨어 처음엔 소나무껍질과 마를 캐어 먹으며 연명하였고 나중에는 도랑을 가리켜 돌아갈 곳이라 여겼다. 그리하여 '부망(不忘)'이라는 두 글자로 토실을 명명하고 스스로 힘쓰며 공맹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으리라 기약하였으니 훗날의 군자들은 이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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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다시 생각하기를, 맹자는 "호연지기가 천지사이에 가득 차 있다"고 했고 또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은 "의리를 축적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하면서 "마음에 잊지 말라"고 하였으니 나는 감히 의리를 축적하여 잊지 않는 것이 바로 도랑에 나뒹구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겠다. 슬프다. 이 몸을 깨끗이 하여 죽음으로 돌아가는 날에 한 갈래의 형체 없는 강대한 기운이 이 작은 방에 충만하고 천지 사이에 가득차서 어디든지 갈 수 있는 혼기(魂氣)와 함께 노닐 수 있겠는가?
갑인년(1914년) 10월에 주인 김택술이 쓰노라.
역) 전북대학교 중어중문과 교수 문학박사 박순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