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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11월30일 수요일 5 (제191호) 관향조 종친회 우리나라 전쟁사에 길이길이 기억되 는 전 쟁 영 웅 박 서 장 군 을 비 롯 한 아 들 재(梓), 손자 현계(玄桂) 등 3대(代) 가 을 시 향 이 지 난 달 2 4 일 (음 9 .2 9 ) 충 북 음 성군 음성읍 삼생리의 묘역에서 성련 고 문이 집례를 맡아 질서정연하고 엄숙하 게봉행되었다. 이날 제향은 벽진서원 보존회 이채 이 사장이초헌관을맡았고,아헌관에는충 민공파 전 회장 달근, 종헌관에는 문익 공파 평현 회장, 좌집사 봉춘, 우집사 용 선현종이각각맡아제례를빛냈다. 박서장군의 字는 양종(洋宗),號는 죽 계(竹溪) 시호(諡號)는 충정(忠靖)이 다. 귀주성 전투의 영웅으로 각종 전투에 서 중요한 전술 교훈을 남긴 전투로 기 억되면서 박서장군은 2010년 8월 호국 인물로선정되기도하였다. 박서장군의 묘소가 있는 곳의 지명은 동음암(東音岩)혹은 벽산 솟골, 무두곡 (無頭谷)이라 한다. 구전으로만 내려오 는 묘소를 1950년경 후손이 묘소를 확인 한 후 돌아오다 호랑이에게 변(虎患)을 당한 이래 불행이 닥칠까 염려하여 아무 도참배치못하였다. 이후 후손에게 현몽(現夢)의 징험(徵 驗)이 있어 확인하기 위해 택일을 잡던 전날밤 ‘묘전에 장군석이 있는데 머리 부분이 떨어져 있음을 현몽’하고 이상 하게 여겼는데 이튿날 시조묘 앞에 현몽 한 일들이 그대로 재현되어 많은 사람들 을 놀라게 하였다. 이에 종중회의를 거 쳐 복원키로 하여 충민공파 종중에서 임 야를 매입하고 2009년 복원 성역화 사업 을마무리했다. 음성박씨대종회가을시향봉행 살리타이의간담을서늘하게한고려조전쟁영웅박서장군,아들재(梓),손자현계 (玄桂) 상주박씨 판서공의 6世 휘 증손(曾孫 號 雲谷)을 비롯한 아들 형제 (휘 기· 매)손자 등 3대5위의 가을 시향이 지난 8일(음10.15) 전남 순천시 상사면 쌍지 리 선영에서 판서공파대종회 주관으로 엄숙봉행되었다. 이날 제향은 병두(炳斗) 집례관의 집 례로 병기(炳基) 전 회장이 초헌관으로 헌 작 하 고 이 어 경 기 남 양 의 상 암 공 종 중 에서 참석한 종택(鍾澤) 현종이 아헌관 을 용하(龍夏) 현종이 종헌관으로 각각 헌작하였으며,서예와한학에밝은병호 (炳虎)축관이 독축하였다.상암공 종중 에서 매년 운곡공의 향사에 참례하는 것 은방계후손간의특별한인연이있다. 운곡공은 1496년 경기도 남양에서 태 어나 관례 전 사마시에 합격하여 족대부 도원재(휘 세희)공 문하에서 경전을 강 론하며 심신과 언행이 바르고 총명하여 스승의 신망과 총애를 받아 정암 조광조 선생도 군자 인물이라며 극찬 받았으니 그 근간에는 족대부 도원재 선생으로 있 음이다. 상암공(휘 안의)의 증손인 세희(世 熹)의 號는 도원재(道源齋), 1510년(庚 午)에 진사시 1등 5인에 합격하고 1514 년(甲戌)에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홍문관 전한으로 호당(湖堂)에 뽑혔고, 홍문관 수찬, 교리, 이조좌랑, 충청도도 사, 사헌부지평·직강·헌납, 병조정랑· 검상·사인·응교·지제교·사간, 성균관 사성·전학, 승정원좌승지 재임 중 기묘 사화(己卯士禍)에 연루되어 강계(江 界)로 유배되었다가 배소에서 생을 마 쳤다.인조조에 복권되고 가선대부 사헌 부 대사헌 겸 동지경연춘추관, 성균관 사, 홍문관 대제학에 증직되었다. 현종 무신년(1668)에 청원건의에 의하여 기 묘명현으로 학문 명절이 특별한 10인에 들어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지경연춘추 관 성균관사홍문관대제학,예문관대제 학, 오위도총부도총관 좌빈객으로 추증 되고 시호 문강(文剛)이 내려졌다.백씨 송촌공과 같이 안곡서원에 배향되었고, 운곡공, 남포공과 함께 전남 순천의 이 천사에배향되었다. 전남 순천지역에 거주하는 판서공파 는 상암공의 동생(휘 안례)집안으로 운 곡공 박증손으로부터 문호가 열린다.운 곡공은 판서공의 5대손으로 자헌대부 行한성판윤,의금부사오위도총부도총 관을 지낸 휘 양선(楊善)의 아들이다. 1 519년 기묘사화로 도원재공께서 강계로 유배를 가면서 세도(世道,세상을 올바 르게 다스리는 도리)의 병이 날로 깊으 니 영 진 하 지 말 것 을 당 부 하 여 십 여 년 간 몸을 감추고 도학에 전념하던 차 1530년 도원재공의 부음을 듣고 단신으로 강계 로 가서 시신을 수습하여 남양으로 운구 안장한 후 부인 청주 한씨와 아들 기( 奇),매(梅)형제와 가족 그리고 사위 양 천인 허형을 대동하고남하하여 전남 순 천 황전을 거쳐 상사면 쌍지에 정착했 다. 한편 제향 前 숭정대부 행(行)이조판 서, 홍문관·예문관 대제학, 지경연 춘추 관 성균관사를 지내고 1404년(영락2,태 종4) 좌참찬에 올라 시호가 문효(文孝) 인 휘 안례(安禮, 판서공파 파조), 그의 아들하(遐,숭정대부행이조판서,홍문 관·예문관 대제학 지서연춘추관, 성균 관사), 손자 휘 기(奇,정헌대부 이조참 판 동지경연춘추관 성균관사 보문각 제 학). 증손 휘 양선(楊善, 자헌대부 行 한 성판윤, 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 의 묘역이 실전되어 모셔진 영모단(永 慕壇)에 봉심(奉審)헌작했다. 박양근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선조님 시향은 후손들의 숭조돈목의 공간으로 화합과 친목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하겠 다고말했다. 뱛상주(상산)박씨운곡공(휘증손)이하 뱛아들 손자 등 3代 5位 순천 상사면 선영에서 열려 판서공파대종회주관븣양근회장화합과친목의장이되길 제관,왼쪽부터양근대종회장,병기초헌관,종택아헌관,용하종헌관,병두집례병호축관 븮태평은 별다른 형상 없고 교화 (敎化)의 아름다움으로 일리워 지 는 도 다 . 크 게 상 줌 은 (正 義 의 實 踐 ) 권면함을 나타내고 북을 울리는 것 으로 군의 사기(士氣)를 돋군다. 충 의(忠義)는 사람에게 달렸으되, 그 것을 몸소 행하는 사람 드물다. 경 (卿)이 담주(潭州, 현 담양)부사에 취임했을 때 같은 뜻을 지닌 이와 이웃이 되었었다.그 대(臺)세 개의 인(印)을건일,(그절개)만세(萬世) 토록 변치 않으리라. 우리가 곤위 (坤位·신위)의 벼리를 붙드는데 그 누구가 조정에서 사납게 떠드는가. 반드시 백방으로 권면(勸 勉)이된다.논정(論定)한것은(영조대왕의)기미년(35년,1797) 부터이다. 선왕(先王) 이르시되 아아, 엄숙하게 만드는 것 (淸 廟의瑟의)붉은현(絃)에서울려나는소리듣는것같다.홀(笏) 을찾아후손등용하니남긴곧은절개버리지않는거다.옛날 에도 행했는데 지금이라고소홀하게할 수있겠는가?사판(祠 版·신주)을영원히받들어제향을드리게하고먼후손(後孫)에 까지 대대로 벼슬을 살게 하리라. 태실(太室)에 정식(庭食)케 하니,그禮융숭하고볼만하다.이해에한차례제사술드림은 干支 (즉 己未年)에 느끼는 바 있기 때문이다. 붓을 잡고 시운 (詩韻)생각하니송백꼿꼿하다.븯 정조23년 기미년(1799) 7월 17일에 좌부승지 윤광안을 보 내제사를지내게하는치제문이다. 이처럼 정조임금께서도 선생의 절의와 의리사상을 높이 평 가함으로서 눌재 박상(1474~1530) 선생은 그가 걸어간 길이 호남인의 정신이요 사상이기에 선생 사후 492년이 지난 지금 에도 후학들의 영원한 추앙을 받아오고 있어 지난 9일 광주광 역시 서구 서창동의 봉산재에서 봉행된 선생의 추모제향에 임하는후손들의각오또한엿볼수있었다. 이날제향에는종표집례관의창홀에따라종률종친회장의 초헌례에 이어 창규, 우성 현종이 차례대로 헌작하고 명성 축 관의독축으로이어졌다. 눌재 박상 선생은 호남지역 입향조 찬성공(휘 지흥(智興, 1 411~1489)의 둘째 아들로 광주에서 태어난 문간공은 연산군 2년(1496) 23세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50 1년 정시문과 을과 에 급제하였다. 교서관정자(校書館正字)를 시작으로 조정의 요직을 거쳤으며 자원하여 담양부사로 나갔으며 충주목사로 재직할때청백리로선록(選錄)되었다. 1506년(연산군 12) 8월, 나주지역에서 행패를 부린 연산군 이 총애하는 여인의 아비 되는 우부리(牛夫里븡일명 김소부 리)가 권세를 믿고 행패를 부리자 전라도사의 자격으로 그를 나주 동헌으로 불러 몽둥이로 때려 죽게 한 일, 전북 순창 강 천사 앞에 세워진 삼인대를 보면 정조대왕께서 “三印其臺 萬 古不면”이라고 신비복위를 청하는 상소를 올린 朴祥븡金淨븡柳 沃 삼현(三賢)세 분을 칭송한 바 있어 선생의 절의정신을 엿 볼 수 있 다 . 선생의 아름다운 정신은 후학들에 의해 더욱 빛나고 있다. ‘눌재선생의 시문학 연구’ 등 각종 서적이 발간되면서 재조명 하고, 종률 회장은 지역 서예가들로 하여금 선생이 남긴 주옥 같은시를써전시함으로서호평을받고있다. 한편이날제향에는선생의두아드님과임진왜란에혁혁한 공을 세운 진사공(휘 희수) 등 후손들의 제향이 함께 이어졌 다. 충주박씨봉산재제향봉향 문간공 눌재 박상 선생 절의정신 기려 충주박씨 봉산재 시향이 지난 9일 봉행된 가운데 눌재선생 제향후 기념촬 영을하고있다. 사진앞줄왼쪽부터종표집례, 종률초헌관, 창규아헌관, 우성종헌관,명성축관 종률 종친회장이 초헌관으로 헌작하고있다. 밀성박씨고양선조원당종중회(회장 봉준) 금년도 10월 30 일 시향제에 대비하여 전직원들과 함께 지난 10월 21일 경기 도 고양시 일산동구 지영동 소재 선산에 위치한 충헌사 사당 건물내븡외대청소를비롯비석및상돌등석물들을깨끗하게 물청소를 하고 시향제 참석하는 종중 회원님들의 마음을 기 쁘게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제를 올릴 수 있도록 철저하게 준 비를하였다. 지난10월30일에는오전10시부터지난해와마찬가지로코 로나19 예방차원에서 원로,고문단 및 이사,감 사 임원진과 각 문중 대표 제주님등 60여명만 참석 봉준회장의 집례로 약 2시 간여동안 진행하였으며 행사가 끝나고 중식을 함께하고 돌아 가는길에는반기(인절미떡)를한봉지씩나누어드리고모든 행사를차질없이마무리짓고해산하였다. 한편 봉준 회장은 지난 달 25일 규정공파 두응촌에서 봉행 된 규정공 단소의 초헌관으로 헌작하며 일가간의 정을 나누 었다. /박봉준명예기자(경기고양시지부) 밀성박씨충헌공파경기도고양시원당종중회 22년시향제만전(萬全)기해븣원당시조시향제봉행 1986년 2월 임야를 매입하여 지영동의 대규모 선영으로 탈바꿈하였으며, 매년시향을맞아비석을비롯한석물을정성스럽게다듬는다. 지난달30일충헌사에서봉행된시향광경 병 승 산 원 공 파 종중(회장 박향 우)는 지난 달 29 일(토) 전북 정읍 시 이평면 오금리 소재 수모재(垂慕 齋)에서 입향조 병 승 산 원 공 ( 휘 쨩)을 비롯한 37 位(배위 포함)의 선조제향을봉행했다. 이평면 오금리는 병승산원공(휘 쨩) 후손들의 600여년 세거지지이다. 입향 한 1400년 초반은 세종조 태평성대를 이 어가고 있는 시기이다. 그러나 세종의 아들 문종은 병약하고 그의 아들 이홍위 (李弘暐, 훗날 단종)은 어렸고, 수양대 군을 비롯 종친들은 권력의 싸움에서 치 열한 암투가 일어나는 시기였다.산원공 의 아버지 세양공(휘 강)은 수양대군을 지지하고 있으나 권력의 암투는 후일을 기약할 수 없는 것으로 평소 글을 좋아 하고 덕(德)을 중시하는 산원공은 권력 의 싸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관직을 버리 고 넓은 곡창지대인 전라도 이평으로 낙 향 산수를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 아들 인정은 1438년 戊午에 본제에서 출생했 다. 1472년 임진년에 진사시에 오르고 1 476년(丙申)에 문과에 올라 응교(應敎) 이고 행(行) 강서현령에 이어 현의교위 군산만호를 지냈다. 덕성(德性)이 돈후 (敦厚)하고 기우(器宇, 외관 생김새)가 완확하며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 한우애가돈독(敦篤)하였다. 부모의 병환에 산신령과 하느님에 정 안수를 떠놓고 빌기를 ‘아버지를 살려 주고 대신 나를 잡아 가소서’라며 간곡 히 빌며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손수 약 시중을받들었다. 어버이 상제(喪祭)에는 진실로 슬픔 을 다하고 깨끗한 제수로 정성을 다해 조금도예의에어긋나지않았고,자녀들 의 훈육에는 모든 일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없음을 몸소 깨닫게 하며 효도하고 우애하고 학문에 정진하도록 하였다.특 히 말은 충성하고 믿음이 있어야 하고 행동은 독실하고 공경해야 하고 청렴과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자녀들에게 인자하고 사랑스러움이 가 득하여 화평한 기운이 집안에 가득했다. 그리고 이웃들에게도 따뜻하게 대우하 므로 공경하고 따르지 않은 이가 없었 다. 혼란한 시기에 세속을 등지고 외부 출 입을 않으려 문을 굳게 닫고 검소한 생 활로 연명하며 깨끗하 게 수신(修身)하 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임천(林泉) 에 서 본 심 ( 本 心 )을 더 럽 히 지 않 고 남 의 평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지키며 일생을 마쳤으니 이 같은 행의 (行義)는 아버지 산원공의 입향과도 다 르지않다. 이후 후손들은 입향조와 그의 아들 군 산만호(휘 인정)공이 영달을 멀리하고 임천(林泉)에서 항상 몸을 깨끗이 하며 수신(修身) 하였듯 학식과 덕망을 겸비 하였음에도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선 조의 가르침을 따르며 선세의 유훈을 지 키며 토호세족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 며 지역에서 명망 있는종중으로 성장했 다. 한편 박향우 회장은 부동산특별조치 법으로 이전한 부동산을 소개하고 협조 하여 준 종원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하고 체계 있는 종중운영으로 보답할 것이라고말했다. 반남박씨병승산원공종중시향봉행 수모재븣배위포함37位 박향우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