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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11월30일 수요일 10 (제191호) 종합 충북 청원군 미원면 금관마을은 함 양박씨 부장공파 후손들의 오랜 세거 지이다. 이곳 금관 숲에 자리란 숭모 재 마당에 금계 박태복 선생의 효행 비가 세워져 있다. 선생의 효행은 마 치 조 선 선 조 때 의 시 인 노 계 박 인 로 선생이 임란에 부모 곁을 떠나 전장 에서 지은 ‘수 만근 쇠를 녹여 노끈을 꼬아 해를 묶어 백발양친 더디 늙게 하리라’는 부모님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도록 봉향해야할 자식의 도리 를 애둘러 표현한 것으로 금계 선생 또한 부모님을 모시는 같은 마음이라 할 것 같 다 . 이는 진실 되게 효를 실천하여 현대 적 효행의 표상으로써 만인에게 칭송 받는 효자인 것이다. 이 또한 부부가 일심으로 효성 지극하였으니 더 놀라 운일이다. 금계 선생은 본관이 함양인 부장공 (휘 건원)의 후예인 휘 영순(永淳)공 과 광산김씨 사이에 3대 독자로 1922 년에출생하였다.선생의부인윤복한 (尹福漢) 여사는 본관이 파평인 구현 (九鉉)의 장녀로 1926년 출생하여 예 의범절이 단정하고 심성 곱고 정숙하 여 신혼 초부터 친척 어른들로부터 칭찬을 들었으며 부창부수로 도리를 충실히 이행하여 결혼 이후로 일절 언쟁없이살았다. 출생당시는 일제 폭정이 극심했고 민생 또한 궁핍(窮乏)하여 초근목피 로써 기근을 면할 정도로 처참하였으 나 3대독자에 소농가로 가세마저 어 려운 상황에 부모봉양을 염두에 두고 근면성실하게살았다. 금계 선생은 유 소년기부터 심성이 따뜻하고 행실 또한 방정하여 부모님 과 향리의 어른들께 총애와 칭찬을 받으면서성장하였다. 부모님 거처 방이 식을세라 꼭두새 벽에 소죽(牛粥)솥에불 짚어 드렸고 삼시 따뜻한 진짓상을 차려 드리려 부단히노력하였다.동리에학교가설 립되어 교원이 부임하여 하숙을 정해 야 되는데 당시 농촌 형편으로는 삼 시 식사제공이 곤란했고 숙식비 받아 봐야 별 무소득이라 모두 기피했으나 금계선생부부의의중은달랐다. 하숙 치르면 삼시 따뜻한 진짓상에 반찬 갖추어 부모 봉양할 상책이란 심 사로 이 를 자 청하 였다 . 부모 님께 반 찬 갖춰 밥상을 올리겠다는 신념은 곧 하숙 을 받 는 선 생님 을 빌어 정성 어린 밥상으로 또 온갖 맛있는 음식을 차려 부모님을봉양하게된것이다. 가을 엔 온 갖 과 일 등 을 저 장하 여 엄 동설한 야식으로 부모님에게 올릴 수 있었다. 원래 병약하셨던 양친의 건강 증진 에 효 험 확 실하 여 당시 론 희 귀하 게 양친을 희수와 미수로 강건 장생토 록 하였다. 선생의 모친이 들에서 일하 는 자 식 점 심 챙 겨 하천 을 건 너려 다 실 족하여 익사직전에 청년들이 구출한 사고가발생한적이있었다.그원인이 자식 불효 탓이라 자책하여 식음을 전 폐하 고 사 죄하 며 용 서를 빌 었고 그 후 론부모님을더욱극진히섬겼다. 해방 전후 돈 번다며 청년들은 고향 을 떠나 도시로 나갔지만 선생은 부 모 봉양할 자식 처지에 슬하를 떠나 객지타향(客地他鄕)을 쏘다니는 것 은 인륜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여겨 많은 사람들이 삶의 길을 찾아 도회 지로 떠나는데도 그런 유혹(誘惑)엔 동요되지 않고, 간혹 외지에 갈 용무 가 생겨서 출타를 하면 밤늦게라도 귀 가 하 여 반 드 시 ‘집 을 나 설 때 는 부 모님께 아뢰고 돌아와서는 꼭 뵙고 아뢰어야 한다.’ 는 출필곡반필면(出 必告反必面)의 도(道)의 이행을 다했 다. 금계 선생 내외는 학교공부는 못했 으나 한글을 알아야 인간행세를 할 수 있다며 기독교에 입교하여 성경 봉독을 생활화 하면서 특히 잠언(箴 言)을 생활신조로 부모공경 부부 애 중 자 녀 양 육 이 웃 친 교 인 생 처 세 생 황지혜등을실행에옮겼다. 선 생 은 평 소 동 리 일 을 능 동 적 솔 선 수범 자세로 봉사하였고 자활정신으 로 다 년 간 마 을 일 을 보 아 오 면 서 상 부상조의 미풍을 되살리는 등 존경받 을일들을많이하였다. 부부는 만고불변의 법례 오상(五 常)을 실천하고 자상 행실을 겸손처 세로 양심 수행하여 항시 신망과 존 경을 받았다. 공은 평소 불손무도한 행위자를 간과치 않고 교화시켜 더 이상 과오를 범하지 못하도록 지도하 여 개과천선토록 하였는데 모두 항변 치 않고 순응했던 것은 그의 평소 행 실이흠절이없었기때문이다. 금계 선생은 슬하에 네 자녀에게 평 소 훈계하기를 “조부모님께서 우환과 병약 없게 하려면 우선 공부 열심히 하 고 항 상 밝 게 웃 는 표 정으 로 진 실 되 게 모셔 즐거움을 드리고 바른 언행으로 기쁨과 희망을 드려라 이웃 어른들을 부모 대 하듯 하고 동료 들은 형 제인 양 사귀고 책임업무는 법과 양심을 좆아 정직처리토록명심하라”일렀다. 이에 자식 또한 부모의 가르침 속에 장님 근희는 삼성그룹의 최고 경영자 (현 대한통훈 부회장)로 성장하였고, 차자 광희는 대기업 중역으로 삼자 춘 희는 유능 한 사 업가 로 신 망 받 고 있 으 며 고명딸 연희는 현모양처의 삶을 살 고 있어 칭 찬 속에 생 활하 고 있다 . 금계선생의 효행이 더욱 빛나는 것 은 1948년 미원면의회에서 박상순 의 장 발의로 만장일치로 채택되어 청원 군수의 효자 표창 수상자로 선정되었 다. 그러나 선생은 부모를 섬기는 것 은 자식 된 도리라며 거절하고 시상 식에 불참하여 사후 면장이 전수하였 으나보관하지도않았다. 이에 선생 부부의 효자행실과 모범 덕행을 표창하여 후세 귀감삼고 행적 을 영원무궁토록 기리기 위한 비를 건립하자는 열화와 같은 여론에 의하 여 함양박씨충청북도종친회에서 효 자비를 건립키로 의결하고 2008는 10 월 1 1 일 숭 모 재 마 당 에 건 립 하 여 기 리고있다. 한편 금계 선생은 지난해 100수를 누리고 후손들에게는 많은 교훈을 남 기고영면하였다. /자료제공박봉석전아달라왕릉참봉 ■효열부열전.... 효자 금계(錦溪)박태복(朴泰福)선생 금계박태복선생이생전슬하에3남1녀의가족이함께하고있다. 세계 최초·세계 최고·세계 최대의 수석박물관으로 부상하고 있는 ‘순천 세계수석박물관’ 본보는 지난 18일 오전 11시 업무협약식(MOU)을 갖고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알리고 500만 박 씨 의 화 합 과 친 목 을 도 모 하 고 종 강 삼시실천에공동으로협력키로했다. 박순구 발행인은 이 자리에서 인사 말을 통해 ‘진돗개 전도왕’으로 천연 기념물 제53호인 진돗개를 세계 우수 견 으 로 공 인 받 게 하 고 희 귀 소 석 을 수집 세계적인 명소로 대한민국을 빛 내고 있는 박 관장님은 이제 우리 朴 姓을 빛낸 훌륭한 성손으로 그 노력 에 감사를 드린다며 최선을 다해 수 석박물관을홍보할것이라고말했다. 이에 박병선 관장은 아내의 적극적 인 도움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 자리 에 올 수 없 었 다 며 4 7 년 간 수 석 수 집 의 1등 공신이라며 부인을 소개하고 지금까지 많은 기관과 MOU를 체결 했는데 오늘 박 혁거세 할아버지의 후예의 대표적인 언론과의 체결은 소 중 하 고 뜻 깊 은 일 이 아 닐 수 없 다 며 종친회 종강삼시 구현에 앞장 설 것 을다짐한다고화답했다. 순천세계수석박물관은오는2월개장 을앞두고전국에서입소문을통해듣고 많은관광객이찾고있는가운데한국관 광클럽(회장이용기), 대한노인회(회장 김호일), 순천농협(조합장 강성채) 등 연일 각계각층의 단체들이 찾아와 협약 을 체결하고 순천시와 전라남도 관계자 또한방문해진입로확포장등의지원을 아끼지않을것이라밝히고있다. 박물관은 현재 660㎡(약 200평) 규 모로 천장에까지 돌이 쌓여 있어 걸 어 다니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곳은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무늬를 가진 문 양 수석이 많은 게 특징이다. 전시실 은 4군자 등 화려한 꽃과 븮십이지신븯1 2동물, 아라비아숫자 1부터 10까지 새겨진 진기한 돌로 가득 차 있다. 태 극기와 우리나라 지도, 무궁화도 150 여 점 있다. 순천만을 상징하는 순천 만 갯벌과 철새,'S자'수로,갈대밭과 칠면초 모습도 보인다.토끼가 달에서 방아 찧는 모습,초가집 굴뚝에서 연기 나는 모습 , 어 미 새 가 새 끼에 게 먹 이를 주는장면,낙안읍성과각종과일문양, 강태공이 낚시하는 모습 등 경이로운 수석들이 끊임없이 보인다.화가가 돌 위에 그림을 그린 듯 새겨진 각양각색 의 문 양들 은 아 름다 움을 넘 어서 신비 로움마저 준다. 태아부터 무덤까지 성 장 단계, 십자가, 4계절, 바다, 동물 등 각종 생 태계 가 돌 안에 총집 합해 있 다. 돌 위 에 그 린 것 같 아 수 세미 로 박 박 문 질러 도 보 는 사 람이 있 을 정 도로 실감 난다. 테마별로 나뉜 돌들을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이들도 문양이 선명 해 쉽 게 알 아볼 수 있어 더 재 미있 어 하고 신나는 표정을 짓는다고 한다. 물론 성인들만 볼 수 있는 '19금'수석도 200여 점 있다. 특히 '애국관'에 전시된 한반도지도모양의수석,태극기와역대 대통령모양의수석들도감상할수있다. 한편 박병선관은 상주박 씨 남포공 (휘 대붕)의 종손으로 그동안 국가사 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1회 대한민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인물 대상’,김대중 대통령 표창장,노 무현 대통령 감사장, 국무총리표창, 통일부장관상 외 6회, 서울시장 표창, 경기도지사표창, 국민일보 미션어워 드 공로상에 이어 지난해 12월 16일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 부터 '봉 사상'을 수여받는 등 손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상을 수여 받았 으며, CTS기독교TV와 국민일보 홍 보대사 제1호 팔마로타리 초대회장, 장애인협회후원회장 등 다양한 사회 활동을 통해 봉사정신을 온몸으로 실 천하고 있어 본보가 재정한 ‘대한민 국지도자대상’ 제3회 수상자로 선정 이날 시상을 하였으며, 이번 업무협 약을 통해 수석박물관을 세계적인 관 광명소로 만들어 국가의 위상을 높이 고 순천시의 관광사업 발전에 기여 할것으로보인다. /박상섭 편집국장(parkss102@han mail.net) 본보 순천세계수석박물관 업무협약식 가져 세계적인관광명소로알리고 종강삼시실천에공동노력키로 박병선관장朴姓을빛낸공로로 ‘대한민국지도자대상’수상 순천세계수석박물관과본보는지난18일MOU를체결하고종강삼시구현에함께노력키로한가운 데이날협약식에는박병룡밀성박씨전국청년회장과임원진,상주박씨남포공후예가함께했다. 박순구발행인(좌)과박병선관장(우)이협약서에서명하고있다. 천성이 순후 단아하고 효우 돈목하여 학문 또한 뛰어나 문과로 군자감(軍資監, 군수품의 저장과 출납을 맡았던 관청)정(正)을 지내고 처음 광양으로 입향 한 휘 상문(尙 文) 공과 그의 증조부 휘 민복 공과 형제 민행·민구, 조부 (휘 인, 認), 아버지(휘 신국, 信國) 등 4代 10위(배위 포 함)의 가을 시향이 지난 10일(음10.17) 전남 광양시 봉강 면비봉산평전등묘원에서엄숙봉행되었다. 21세기 해양시대를 맞아 동북아시아의 물류거점 항만 도시로의 커다란 도약이 기대되는 광양의 상주박씨는 기 묘사화(己卯士禍)때 한양에서 전남 순천의 운곡촌에 이 주 향리의 자제들을 모아 도학을 연구하여 일세(一世)의 사표(師表)가 되었던 운곡공 박증손 선생의 후예이다.운 곡공(휘 증손)의 아들 형제 중(기, 매) 장남 기(杞)는 광양파로 광양시봉강면으로이거해집성촌을이루고있으며차남휘매 (梅)의후손들은순천파로불리며순천시상사면서면일대에 세거지를이루고지난8일운곡정사에서시향을봉행했다. 운곡공의장남기(杞)의손자민행의후예는여수율촌평 촌에 세거지를 이루고, 민복의 후예는 장남 인의 아들 신방 이여수율촌행정마을에차남신국은광양봉강에남았고,민 복 의 차남 당의 후 예는 광양 골 약 중 동, 삼 남 휘 양 의 후예 는 순천시 해룡면 계당마을, 사남 진의 후예는 광양 도청에 각 각집성촌을이룬다.이에이날향사에는율촌의행정문중과 평촌문중봉강문중등이참여했으며,순천파로불리는휘매 (梅)의종중에서도방계조향사에참여선조의얼을기렸다. 봉강의 입향조는군기감정을지낸박상문선생이처음광양 시 봉강면으로 1700여년 초 이주하게 되어 후손들은 300여년 동안 150세대 500여명으로 번성하면서 봉강면의 봉(鳳)자와 마을(村)의원음을따봉촌(鳳村)문중이라고한다. 제향이봉행된평전묘원은군자감정을지낸휘상 문(尙文) 선조께서300여년전전남순천에서광양봉강면으로입향,평 전등에모신이후1999년순천의선영이도로공사로인하여증 조부인 휘 민복 공을 비롯한 3형제분과 조부(휘 인, 認), 아버지 (휘신국,信國)의묘소를옮기면서확장조성되었다. 잘 가꾸어진 묘전을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묘원관 리에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 할 것으로 보이나 묘원으로 인 해자부심과자긍심또한함께갖는다고종원들은전한다. 평전묘원 주변에는 봉촌 문중의 재실 지묘재와 1907년 지 금의 광양서초등학교의 전신인 광명학교를 설립하여 신식 교육을 맨 처음 실시한 선각자 술재 박희권 선생과 구한말 대학자이며 애국지사인 매천 황현 선생의 숭고한 얼이 깃든 유서깊은정자거연정이봉계리냇가에자리하고있다. 한편 이날 묘제에는 박인기 전 회장(전 교장)의 집례로 초헌관 박홍천, 아헌관 박영수, 종헌관 박경숙, 축관 박병구 현종이각각소임을맡아질서정연하게제례를 모셨다. 상주박씨 광양 평전묘원 시제봉행 사벌대군22세휘민복(敏復)의3형제와아들손자등배위포함10위(位) 제관,왼쪽부터초헌관박홍천,아헌관박영수,종헌관박경숙,축관박 병구,집례박인기順 충주박씨 참의공시제가지난10월2 5일 박경석 신임장의 집례로 시행되었 다. 코로나 관계로 3년간 시제를 제대 로 봉행 하지 못 하다 가 금년 에는 100여 명 의 종 원이 참 석하 여 성 대하 게 시제 를 봉행하였으며 총회에서는 그동안 5 년간의 종무를 맡아오던 박선복 장의가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함에 따라 박경석 신임장의를총회에서선출하였다. 충주박씨 참의공파는 관조 휘 영(英) 의 9세(世) 휘 진( 풂 )으로부터문호가열 린다.공은개성소윤을 역임하고사복시 정에 증직된 휘 광리(光理)와 합천이씨 (陜川李氏)의아들삼형제중둘째로136 6년(공민왕丙午)에태어났다. 진사(進士)가 되어 나라가 어지러 워짐을 알고 공명의 뜻을 버리고 동 생 소(蘇, 판서공)와 함께 호서 덕진 현 유성리에 은거(隱居)하여 후학을 가르치며 여생을 유유자적(悠悠自適) 하다 조선조에 이르러 사헌부 감찰에 제수되고, 이어 진해·직산감무가 되어 많은 치적을 남기고 1422년(세종 4, 壬 寅)년에하세하니향년57세로 손자형 무(衡武)의 귀(貴)로 인하여 병조참의 (兵曹參議)에 추증되었으며, 본리(本 里)도솔봉(兜率峯)아래 신좌원(辛坐 原)에 예장 (禮葬)되고 , 관직 을 인 용 참 의공파(參議公派)라한다. 충주박씨참의공시향봉행,신임장의경석현종추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