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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성품이 강직하고 엄격하신 현파(혜암) 박래홍 선생은 포덕35년(1894) 9월 2일 충남 덕산(현 예산)에서 부 박상호 어른의 장자로 태어나 종숙인 천도교 제4세 대도주 춘암 박인호 상사의 사자로 수양되어 경성관림 정동학교와 보성중학교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하시다. 사정에 의해 학업을 중단한 선생은 3.1운동 이후 천도교의 중흥을 위해 천도교 청년교리강연부및 천도교청년회 창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셨으며 김기전 방정환과 함께 우리나라 어린이운동의 선구인 천도교 소년회창립에 기여하시다. 27세에 중국 북경대학에 입학한 선생은 교회사정으로 1년만에 귀국, 포덕64년(1923) 교회 청년지도자들과 더불어 천도교 청년당을 창당하여 중앙상무위원으로 교단의 전위적 역할에 헌신하시다가 천도교 청년동맹및 천도교 청년총동맹을 창립하여 대표위원을 역임하는 한편 포덕68년(1927) 권동진선생과 함께 민족유일당인 신간회 창립에 적극참여하여 총무간사로 활동하시던 중 포덕 69년(1928) 10월 5일 일제의 사주로 추정되는 괴한의 저격에 의해 35세를 일기로 환원하디가. 당시 천도교 청년동맹과 신간회의 주간에 의한 사회장으로 고양군 수철리(현 신당동)에 안장되었다가 포덕105년(1964)에 이곳에 모시다. 정부는 포덕136년(1995) 광복50주년을 기해 국권회복에 기여한 선생의 공로를 기려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다. 이에 천도교청년회와 후학들은 천도교청년회 80년사 간행에 즈음하여 선생의 애교충국정신을 계승 선양하고자 정성을 모아 이 비를 세우다..
포덕 141년(2000) 11월 5일 천도교 청년회중앙본부 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