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page


69page

민족사 수천년에 성쇄의 순환이야 없으리오마는 일제의 침략사는 마땅히 내버릴 분노의 역사일지나 기미의 3.1독립운동은 일제의 침략정책을 규탄하고 조선독립을 선언하면서 만방 곡곡에서 궐기하여 자주민족임을 세계 만방에 보여주고 한민족 영생을 과시한 거족적인 항거이었으니 우리의 독립만은 연면하였던 것이다. 돌이키니 3.1만세는 피눈물이 맺힌 만세요 부르면 잡혀가고 살상이 뒤따르며 누기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복받쳐 오르는 절규를 대한독립만세라는 한마디로 표현하여 부르고 응하고 울부짖는 만세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청안의 만세시위는 3월 00일 장날을 기하여 일어나 모인 인원이 삼천을 헤아리는 규모와 우람한 성세로 상흔 또한 깊었다. 이 무렵 괴산의 남부 4개면에는 오직 청안시장이 있을뿐이매 장날을 기하여 의거하고자 젊은 주도자 이태갑 장성원 신강면 함재원 박래명 김수백등이 사전계략을 세워 이태갑은 증평 도안을 장성원은 사리면을 신강면은 청안면 일부를 각각 책임지고 동원하도록 밀의되었다. 30일에 들어 괴산 연락원 천주교인 이모가 오후 1시경 태극기 수천매를 준비하여 청안에 다다르자 이태갑 장성원 신강면등이 군중에게 나누어주고 싸전거리에 모이게 하여 오후 2시경에 거사는 벌어졌다. 괴산 연락원 이모의 독립선언문 낭독에 이어 이태갑이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자 흥분에 쌓인 군중은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절규하여 그칠 줄을 모르고 시위행렬은 주재소와 우편소를 엄습하려하니 왜경과 주둔 일병은 강력히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