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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2월29일 토요일 8 (제158호) 시·군·구 지부 불멸의 독립투사 박희광 애국지사를 기리는 50주기 추모식 이 지난달 22일 오전11시 구미시 금오산 저수지 입구에 세워 진 동상앞에서 경북지역 유일 생존 애국지사 배선두 선생을 독립유공자 가족, 노수문 광복회 대구지회장, 이동일 광복회 대구지부장, 백승주 국회의원, 구미시 박성애 사회복지국장 등기관단체장과시민등200여명이참석한가운데있었다. 이날 추모식은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애국지사를 기리려는 시민과 학생들의 열기 속에 애국지사 박희광선생 기념사업회 와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에서 주최했으며,선생의 약력보 고, 추모사, 분향 및 헌화, 추모시낭송, 광복군아리랑 공연, 독 립군가 제창,유족대표인사,시민헌화 순으로 1시간여에 걸쳐 진행됐다. 이수연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선생 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긴 항일투사로 그 위 대한 업적과 숭고한 애곡충정을 기리고자 추모식을 거행하게 되었다며 오늘 추모식을 선생의 태생지 구미에서 처음으로 거행하게 되어 의미 있는 시작으로 오늘 동상앞에서 추념에 만 끝내지 말고 확고한 국가관과 애국애족의 길을 깊이 새기 며다짐하는자리가되길바란다고말했다. 민족문제연수고 전병택 前구미지회장의 약력보고에 이어 광복회 이동일 대구지부장은 선생의 항일투쟁정신은 저항운 동의 본보기가 되었고, 숭고한 정신과 발자취는 우리 가슴속 에 영원히 살아 있다고 하였으며, 노수문 광복회 대구지부장 은 평생 구국의 일념으로 항일투쟁의 일관된 삶을 살아 간 박 희광 선생은 아버지, 조부가 독립운동을 한 가문의 영향이 커 애국자 집안에는 애국자가 나고 친일파 집안에는 친일파가 나온다며 구미의 자랑 경북인의 자랑이지만 생가복원을 못해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있어 구미시에서는 생가 복원에 관심 을 갖 고 적 극 동 참 과 협 력 을 당 부 하 고 나 라 사 랑 큰 뜻 을 길 이 길이알릴수있는계기가되길바란다고하였다. 광복회 대구 수성구지회장을 맡고 있는 장남 근용 현종은 유족인사를 통해 쌀쌀한 날씨에 원근를 마다하지 안하고 함 께해준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하고 나라를 빼앗긴 국 민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한 많은 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잊지 말았으면한다며애국애족을상기시켰다. 애국지사 배선두 선생이 맨 처음 분향과 헌화를 시작으로 박성애 사회복지국장, 백승주 국회의원 순으로 내외빈과 시 민들의 헌화가 이어지고, 정명숙 시인의 추모 시낭송에 이어 구미 의병아리랑보존회의 광복군 아리랑공연과 독립군가 제 창이 이어진 가운데, 어린이 경제신문기자단은 취재와 함께 나라사랑의 각오를 다졌으며, 참석한 시민들은 선생의 숭고 한 애국정신과 항일 독립정신을 자라나는 후손들에 전승해서 국민들마음깊이새겨야할것이라고전했다. 박희광 선생의 본관은 밀성(밀양)으로 본명은 희광(喜光), 자(字)는 상만(相萬)으로 항일 의병운동가인 윤하공의 다섯 째 아들로 선산(현,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 171)에서 1901년 2월 15일태어났다.상계(上系)를보면밀성대군의 8世孫으로 상서좌복야를 지낸 휘 언인(彦仁)이 중조(中祖)이고, 복야공 의 8世孫 한성부판윤을 지낸 휘 천귀의 차자인 이요당 휘 흥 거(興居)의후손으로경주부윤에오른휘수홍의11세손이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인 1912년 일제강점기시절부친윤하 공(公)의 항일 의병활동으로 인해 일본 경찰의 주목을 받게 되자11살어린나이에부친을따라만주로건너갔다. 만주로 건너간 청소년기시절, 봉천성(奉天省)에 있는 남성 자학교를졸업하고,조선독립이라는큰뜻을품게된다. 18세 되던 해인 1919년 선생은 만주에서 결성한 임시정부 무장독립운동단체인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자진 입대하 여,특공대원으로써활약하게된다. 암살과 테러에 필요한 승마와 수영, 사격, 폭탄제조법, 독 침, 변장술 등의 교육을 받고, 신분을 숨긴 채 대한통의부의 암살전문요원으로활동하였다. 1924년 박희광은 임시정부로 부터 만철연선(萬鐵沿線)의 친일파를 토벌 하라는 특명을 받고, 김광추(金光秋), 김병현 (金炳賢)등과 3인조 암살 특공대를 결성하여 이들의 숙청작 업을하였다. 독립신문 大正14년 1924년7월26일자(음,6월25일 土曜日) 기록에 의하면 '삼장사(三壯士)의 용감(勇敢)'이란 제목으로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김광추(金光秋) 김병현(金炳賢)박상 만(朴相萬·박희광예명) 삼장사(三壯士)가 백주(白晝)에 용 감(勇敢)히 봉천신시가정정(奉天新市街錠町)즉 왜경찰서접 근(倭警察署接近)에 은복(隱伏)한 전 보민회 괴수(保民會魁 首) 최정규(崔晶圭)의 가족을 토벌(討伐)했다'는 내용으로 항일독립운동일대기를기록했다. 1924년 6월1일에는 윤영기 동지의 안내로 무순방면의 고등 계 첩자이며 여순 조선인회(旅順朝鮮人會)서기인 악질 친일 파 정갑주(鄭甲周)와 가족을 현장에서 사살하고 뷺정갑주, 조 국을 배신한 첩자!우리는 조선독립을 위해 싸우는 투사다.너 를조국의이름으로처단하겠다뷻라는선고문을남겼다.이사 건으로인해다음날여순(旅順)시내는발칵뒤집히게된다. 그리고 삼엄한 경비를 빠져나와 1924년6월7일 대낮에는 보 민회(保民會)를 습격하여 이용구(李容九)와 더불어 열성 일 진회(一進會)원이자 일제 강점기의 직업적 친일 인물로 국권 침탈에 앞장섰던 친일파 거두 최정규(일본식 이름: 山本正夫, 1888년 음력 8월 25일 ~ 1940년 양력 8월 21일, 일제 강점기의 직업적 친일 인물로 만주 지역에서 밀정 단체를 운영했으며, 다른 이름으로최창규(崔昌圭)가있다)를 암살하려 하였으나 최정규가 미리 피신하여 그의 부하 허 윤과 가족을 사살하였 다. 박희광과 이들 3인조 암살단은 1919년부터 1924년 체포 시 점까지 일본 고관과 친일파 암살, 일본총영사관을 비롯한 일 제기관 기습활동으로 일본 군경에 이미 수배 중이던 상황이 었다. 박희광은 1924년 대련지방법원에서 1심에 사형을 받았으 나, 1927년 뤼순(旅順)고등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형이 확정 되어 여순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일본천황(裕仁) 즉위 때 와 황태자 출생 때에 감형되어, 20년(1924년7월~1943년3월) 을 복역한 후 1943년 43세의 나이로 출옥 백범 김구 선생의 경 호책임자로 활동하였으나 김구 선생이 암살당하자 분개함을 이기지못학조용히시골에은거하면사회사업에몰두하였다. 1968년3월1일 삼일절 행사 때 대한민국 건국훈장 국민장 (현 독립장)을수여받았다.그로부터 2년 후인1970년1월22일 71세의 일기로 서울 보훈병원에서 타계하였으며 그의 묘소는 서울 동작동 국립 현충원 애국자묘원에 문화 류씨(류문기)부 인과 함께 안장되었으며, 슬하에 아들 근용(根用), 정용(正 用), 선용(先用), 수용(秀用)과 딸 정희(正姬) 등 4남 1녀들 두었다. 정희 대통령은 1973년 3월 1일 박희광 선생의 업적을 기리 기 위해 "애국지사 박희광 선생지상(愛國志士朴喜光先生之 像)"이라는 친필휘호와 지원하사금으로 당시 일백만원을 내 렸으며, 1972년 당시 김봉환 국회의원을 추모기념탑 건립추 진위원장으로 선임하고 유관기관과 유지들이 함께하여 추진 하였으나 사정이 여의치 못하여 10여년이 흐른 후 1983년 구 미문화원사업으로 추진위원회(추진위원장 구미문화원장 김 교홍)를 재구성하여 구미시민과 초·중·고 대학생, 보훈·사회 단체, 정부기관(문화공보부, 국가보훈처, 경상북도, 구미시) 단체, 범 시민단체 등 각계 인사들의 힘으로 경상북도 구미시 금오산 도립공원경내 백운교 옆자리에 동상(입상)이 세워졌 으며 1984년12월28일 건립제막 하였다, 또한 해방이후 거처하던 제2고향인(달구벌)대구광역시 달 서구 두류동 두류공원 내 조각공원(인물동산)에 국가보훈처, 대구광역시 달서구, 구미시, 칠곡군, 광복회, 박 의사 기념사 업회( 명예회장 이수성), 광복회 대구·경북 연합지부가 추진 위(추진위원장 김성권)를 구성하여 동상(흉상) 통일염원태 극횃불조각상을1997년 8월 15일 건립제막세워졌다. /박상섭 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애국지사박희광선생50주기추모식가 져 독립지사박희광선생50주기추모식이 지난 달 22일구미 금오산입구의동상에서거행된가운데내외빈과 유가족,어린이기자단 이 함께하고있다. 너를조국의이름으로처단하겠다뷻븣암살특공대활동救國愛族불명의독립 투사 배선두애국지사(左)와박성애사회복지국장이 헌화하고있다. 유가족이 참석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근용, 정용, 정희, 선용,수용 順 더불어함께 한 아름다운 여정 (旅程), ‘오리표’ 씽크의 새 이름 에넥스 박유재 명예회장이 ‘팔 전구기 인생드라 마’ 자서전을 펴 냈다. 충북 옥천군 청산면 한곡리 태안박씨 가문의 아버지 환직 공(公)과 어머니 정 증희 여사와의 사이에 2남 3녀중 장남으 로 1934년 1월 15일 태어난 박 회장은 어 렸을 때부터 과학자의 꿈을 키워왔다. 그러나 대학시절 무역회사에 입사하면 서 자연스럽게 무역과 경영을 접하게 되 었고 과학자인 자신의 꿈과 다른 경영인 으로서의변신을꾀하게되었다. 경영인의 길을 택한 그는 더 큰 꿈 을 이루고자 스물아홉이라는 젊은 나이에 무역회사를창업하게되었고,미국과유 럽 등을 다니면서 선진국들의 앞선 문물 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해 외 첨단 입식부엌가구를처음 알게 되었 으며 국내에 도입하고자하는 욕구가 생 겼다. 해외 거래처 관계자 집에 초대받아 가 는 일이 있었고, 요리나 설거지를 하는 과정에서 그 외국인의 부인들이 식탁 가 까운 곳에 서서 편하게 채소를 씻거나 그릇을 닦은 것을 보았다. 그리고 부엌 에서 허리를 잔뜩 구부린 우리나라 어머 니와 아내들에게 그 부엌을 통째로 들고 가서 선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그렇게 시작된 오리표 씽크는 우리나라 씽크대 의 대명사가 되었고, 마침내 국내에는 ‘최초 입식부엌 가구(오리표씽크)’가 생 기 게 되 었 으 며 박 회 장 은 이 를 발 판 으 로 부엌가구 산업의새로운 역사를 다져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일 ‘에넥스’로 재탄생하며 지금도 우리나라 주방문화 를선도하고있다. 우리나라에 서양식 입식 주방문화가 시작된 것은 1970년대였고, 그 주역은 1 971년 ‘오리표’ 씽크를 처음 만든 박유 재 회장이었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겪 었던 성취와 좌절, 시련과 극복의 드라 마틱한 여정을 담았다. 어린 시절 양자 살이부터 시작하여, 글로벌 금융위기로 회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거액의 개인 재산을 회사에 기증해 되살려낸 팔전구 기의 인생을 통해 한 개인을 넘어 모든 이들의 꿈과 도전의 의미를 되묻게 한 다. 때로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서 더 나 은 미래를 향해 나아간 도전의 삶, 부뚜 막에서 싱크대로, 오리표에서 에넥스 로, 더불어 함께 한 아름다운 여정 박유 재의 팔전구기 인생드라마는 쉽게 좌절 하고 넘어지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시 련은 모험이며 도전은 기회’라는 사실 을일깨운다. 박 회장은 책을 펴내면서 아무것도 없 이 맨 손 으 로 시 작 해 8 번 의 위 기 를 극 복 하고 그 때마다 기사회생을 하면서 피와 땀으로키워온기업도소중하고,60년간 경영인으로서얻은명성도값지지만,정 말로 남기고 싶은 것은 우리 후손들이 힘든 여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 할 수 있는 정신을 물려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저성장시대를 살면서 미래에 대 한 희망을 잃은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소망하며 책을 발간하게 되 었다고 전하는 박 회장은 86세의 고령에 도 경영철학이 담긴 기고문을 주요 일간 지에 게재하며 경제지표을 제시하기도 해 우리나라 경제발전에도 크게 이바지 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부엌가구 제1호 명장배출을비롯,금탑산업훈장수상,1 1년 연속 품질 경쟁력 우수기업, 6년 연 속고객만족 1위기업 등다양한업계최 초의기록들을보유하고있다. 자서전‘팔전구기의인생드라마’출 간 박유재명예회장 저성장시대미래에대한희망을잃은후배들에게도움이되길소망 ‘오리표’ 씽크의 새 이름 에넥스 박유재 명예회장 경자년 새해를 맞이하여 명곡서원 경 덕사에서는 정헌 박성양선생을 찾아 세 배를드리는세알례가있었다. 이날 행사에는 지역 유림과 후손 등 2 5명이 참석 상견례와 함께 새해 안부를 묻고덕담을나누었다. 세알례(歲謁禮,또는 正謁)는 새해 정 초인 정월 초닷새에 사당에 배향된 선현 에 게 세 배 하 는 우 리 전 통 고 유 행 사 이 다. 명곡서원은 고려 말 28은(隱)의 한분 이신 정헌공(定憲公) 박성양 선생의 학 문과덕행을추모하고,지역민의교육과 후진양성을 위해 순조 18년(1818)에 창 건되어 철종 2년(1851)에 사액됐다. 그 후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고 그 뒤 1905년 명곡 서당으로 후학양성기관으로 운영되다 1 975년 명곡서당을 명곡서원으로 복원하 여 지금에 이른 명곡서원이 지난 1일자 로 의성군문화유산 제37호로 지정되었 다. 박성양 선생의 박성양 선생의 호는 금 은(琴隱), 시호는 정헌(定憲)으로 본관 은 함양, 상서공(휘 선)의 11세이고, 중 시조는 금자광록대부 판삼사사를 역임 한 휘 지량(3파)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중랑장휘윤후(允厚)이다. 태조6년 5월에 왜구가 남해안에 침입 하여 백성이 어육을당하고 있으니 조야 (朝野)에서공론이븮박성양은 문무를 겸 전한 용감한 인로서 왜적을 격퇴시키는 데는 가장 적절한 인물이오니 등용 하시 옵소서븯하고 천거하자 태조는 왜구 정 벌원수로삼았다. 선생은 일신의 영을 위한 소명은 거절 하였으나 나라와 백성을 구휼하는 일이 기에 흔쾌히 수락하여 부산포로 달려가 60일 만에 왜적을 소탕하고 대첩을 거둬 태조는 뷺3자의 큰 칼로 사직을 안정시키 고 한줄기 채찍끝으로천하를 평정하였 네뷻라며어사시를하사하였다. 이후 광주목사,우군절제사,우군동지 총제,이조참판겸도총부부총관을역임 하고 은퇴 후 고향으로돌아와 제손들을 위시하여 인재양성에 매진하였으며, 고 종 5년에 이르러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성균관제주 오위도총부도총관의 증직 과시호가함께내려졌다. 명곡서원경자년새해세알례가져 정헌공(定憲公)박성양선생의충의정신기려 밀성(밀양)박씨대종회정기총회안내 밀성(밀양)박씨대종회 정기총회가 아래와 같이 개최됨을 알려드리오니 공사다망하시더라도 꼭 참석하시어 종회발 전에기여하여주시기를앙망합니다. ▲일시 :2020년 3월25일(수요일)오후6시 ▲장소:경남밀양시내일동‘밀성재’ 뱚※다음날인26일은밀성대군을비롯한아드님삼한벽공도대장군(휘욱),손자요동독포사(휘란)의춘 향이봉행됩니다.많은참례바랍니다. 밀성(밀양)박씨대종회회장박원주배(拜)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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