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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정치‧행정Ⅰ 468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에 미달하는 곳은 이를 합병정리하였다. 이와 같은 내용은 당시 일 본의 행정구역 내용을 원용한 것으로 이때의 부군은 일본의 시군 을, 면은 일본의 정촌町村을 기준으로 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리에 대해서는 일본의 문자를 그대로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9) 총독부가 군‧면을 통‧폐합한 이유를 「종래의 행정구역은 그 지 역 ‧호문‧자력에 심한 부동이 있었고 특히 면에 있어서는 그 폐가 우심하여 」, 「일찍부터 이의 폐합‧정리의 필요성」을 인정했다고 하 고 「한편으로 시정상의 편의와 경비의 절약을 도모하고 한편으로 인민의 부담을 균형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하였다. 그 러나 일제가 이 시기에 과감하게 군면을 통‧폐합한 이유는 무엇 보다도 경비의 절약과 시정상의 편의에 있었으며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한반도 전역에 걸친 토지조사사업으로 각 지방의 지형‧ 지세‧면적 등이 명확히 드러나게 되자 이를 근거로 주민의 반대, 민심의 동요를 막을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일제 가 제시한 군면 통‧폐합의 표준은 대단한 기준이라도 세워서 이 에 맞춘 것과 같이 자랑하고 있으나 총독부가 중점을 둔 표준은 사실상 일본인 거주자의 수와 그 비율이었던 것이다. 즉 일본인 8) 방리라 함은 일제시대 일본인이 즐겨 쓰던 넓이의 단위이며, 1방리는 약 15.423㎢의 넓이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4방리는 61.694㎢이고, 40방리는 616.94㎢에 해당된다. 9) 경상북도사편집위원회, í��경상북도사��중, 1983, 33-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