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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정치‧행정Ⅰ 250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동철수에 대한 작전회의를 열었다. 당시의 육군본부 작전명령에는 “7월 31일과 8월 1일간의 야음 을 이용해 낙동강 남쪽 연안으로 철수”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제1군단은 안동철수 시간이 임박한 무렵에 가서 야 작전명령 하달을 위한 회의를 개최한 탓으로 철수작전에 매우 불리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더욱이 이 작전회의에서는 제8사단과 수도사단 간의 철수 순 서와 방법에 대한 의견이 대립되어 자정을 넘기면서까지 타결점 을 찾지 못한 채 회의가 계속되었다. 뒤늦게 회의에 참석한 군단 장 김홍일 소장은 수도사단의 엄호 하에 제8사단이 먼저 철수하 도록 결정하였다.26) 제1군단은 8월 1일 01시에 군단작명 제40호 를 하달하여 제8사단이 제1연대의 엄호하에 철수작전을 전개하 도록 했다. 이 명령을 받은 제8사단과 수도사단 참모장이 각자 그들의 사단전술지휘소로 되돌아간 시간은 8월 1일 02시 무렵이 었다.27) 제8사단 참모장 최갑중 중령이 군단작명 제40호를 휴대하고 사 단전술지휘소에 도착한 것은 03시 무렵이었다. 이에 사단장 이성 가 대령은 접적이 경미한 제10연대‧제21연대 순으로 철수를 실시 26)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í��단양ᐨ의성전투��, 1982, 153쪽. 27) 안동 철수명령의 하달 과정과 관련해서는 증언마다 다소간의 차이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