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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정치‧행정Ⅰ 216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을 하자, 우파 계열의 청년이 청년동맹의 깃발을 빼앗는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났다. 충돌은 확대되지 않고 곧 수습되었으며, 가두 행 진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구담농민조합 회관 앞에서 다시 돌아올 무렵, 약 1백 50여 명의 우파 세력이 곤봉 등을 가지고 시위 행렬을 습격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20여 명의 중상자를 포함하여 약 1백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유혈사태가 일어났으며, 이와 관련하여 모두 63명이 경찰에 체포되었다. 미군정은 좌우 세력 사이의 대립이 날로 격화되자, 좌파 세력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였다. 먼저 충돌이 발생한 구담리에 주재소를 새로 설치하는 등 경찰력을 강화했으며, 동시에 좌파 세력의 집회 를 금지하는 등 활동을 엄격히 통제하였다. 나아가 좌파 세력을 체포하는 일이 빈번하였다. 이 때문에 경찰서는 물론 안동형무소 의 수용 공간이 부족하여 체포된 사람들을 인근 지역으로 분산 수 용할 정도였다. 반면에 미군정은 우파 세력의 활동에 대해서는 적 극적으로 지원했으며, 우파 세력은 이를 이용하여 더욱 더 격렬한 반탁 운동과 반좌파 운동을 전개하였다. 1946년 3월 열린 미소공동위원회가 미국과 소련 양국의 입장 차이로 5월에 성과 없이 결렬되자, 좌우 세력 사이의 대립은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5월 중순에 우파 세력이 역량을 총결집한 대규 모 반탁 집회를 열었으며, 대회를 마친 후 가두 행진을 벌이는 과 정에서 좌파 세력과 충돌하기도 하였다. 6월 하순에는 좌우 청년 들이 축구경기를 벌이다가 충돌을 일으켰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파 청년들이 인민위원회‧농민조합‧인민당‧청년동맹의 사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