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page


357page

김개남 장군 묘 김개남 장군은 1853년 9월 15일 정읍시 산외면 동곡리 지금실에서 도강 김씨 대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894년 3월 백산에서 전봉준, 손화중과 함께 사생을 맹서하는 창의문과 백성을 도탄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 두겠다는 격문을 사방으로 보내며 동학농민군을 이끌었으며 전주화약을 맺은 뒤 남원성을 중심으로 집강소를 설치하고 전라 좌도를 평정한 후 폐정개혁을 추진하였다. 이 때 「영주」라는 본명을 "남쪽을 연다"는 뜻의 「개남」으로 바꿨다. 그해 9월 2차 기포때 관군의 요충지인 청주병영을 공격하다 실패하여 태인으로 내려와 재기를 준비하던 중 산내 종성리에서 임병찬의 고발로 관군에게 붙잡혀 서울로 압송 도중 12월 3일 전주에서 마흔둘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시신을 거두지 못해 무덤마저도 없었으나 1995년 4월 김개남 장군이 살았던 이 곳에 그의 가묘와 묘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