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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31년(1894) 왜병이 우리 주권을 무시하고 우리 국토에 올라 천인공노할 포학을 마구하여 왔으되 우리 정부는 황제나 국민의 의사에 어긋난 꼭두각시로 되었다. 국민은 끓어올랐다. 왕산 허위 선생은 떨쳐일어나 잃어진 주권을 돌릴려고 경상도 김산에서 의를 들어 괴뢰관군의 박격에 굽히지 않고 충청도 진천에 이르자 해산의 황명이 내렸다. 이때 적세는 일시 물러서고 적에 붙인 정부도 무너졌으매 그는 완전 복수설치를 못한 한을 머금은채 명에 좆아 돌아섰다. 그 뒤 황제는 선생의 재략을 듣고 불러올렸으나 그가 의정부참찬.비서원승 등 요직에 오를 그때는 이미 늦어 왜병이 또 들어와 러시아병을 쳐넘긴 광무8년(1904).9년의 사이라 선생은 그럼에도 마음을 떨어뜨리지 않고 안으로 국정을 바로잡고 밖으로 외모를 막아낼 길들을 갖추 아뢰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나라의 망함을 깨우치는 눈물의 상소와 왜병의 불법을 외치는 피끓는 격문으로 도리어 붙잡혀 갇히게 되었다. 나랏일의 이미 글렀음을 깨달은 그는 삼도봉 밑에 들어가